예술의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인간의 창조성이 필요한 곳에는 언제 어디서나 예술이 피어나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누구도 가지 못하고 닿지 못한 예술의 영역을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개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술의 세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두 번째 순서로 왕실과 귀족의 품격을 보여주는 화각공예를 만나봤습니다.
종잇장처럼 얇게 간 황소의 뿔에 그림을 입히고 채색을 더하면, 굳센 뿔이 어느새 유려한 자태를 머금은 문양이 된다. 가구의 표면에 채색된 뿔을 안착시키면, 부착물에 새 생명이 깃든다.
화각공예는 동양 문화권 중 한국에서 특히 독보적으로 발전한 예술이다. 물소 등의 다른 소가 아닌, 한국에서 자생하는 황소에게 얻는 뿔에서만 투명하게 비치는 채색면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각을 통해 완성된 그림은 뒷면에 비쳐보인다는 특성 때문에 일반 회화의 채색 순서와 반대로 원근감을 고려해 칠한다. 화각의 기원은 신라시대부터 시작됐다고 추측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한 대모복채기법이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를 거쳐 신라에 전승됐지만, 당시 국내에선 대모(거북이 등껍질)가 희귀해서 그 대체재로 소뿔을 사용하게 되면서 한국만의 독특한 화각공예가 발전할 수 있었다.
화각공예는 예나 지금이나 그 품격을 유지하는 데에서 정체성을 발견한다. 화각은 귀족과 왕실의 전유물이었는데, 사용됐던 회화 안료인 당채가 계급에 따라 사용 여부가 달라진다는 전통이 조선시대까지 고수됐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실패나 바늘집, 보석함, 중형·대형함 등을 비롯한 화각공예품은 왕족을 비롯한 상위 계층만이 누렸다. 주로 장식됐던 무늬는 십장생, 풍속화나 화도, 초화 등이었으며 동식물의 신비한 자태를 세밀하게 표현해낸 미학을 엿볼 수 있다. 현존하는 화각공예 유물은 19세기 이후의 것이 많고 그 이전에 제작된 작품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화각의 주재료인 우각(각지)이 습도와 온도에 민감해 장기 보관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경기일보는 한기덕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9호 화각장 전승교육사(49)를 만나 화각공예의 현주소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는 1973년 공방을 설립한 아버지 고(故) 한춘섭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9호 화각장의 뒤를 이어 화각의 맥을 잇고 있다. 그는 원래 예술과는 거리가 먼 전공과 직장에 몸담고 있다가 가업을 잇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한씨는 치열했던 성남 구시가지 한구석의 15평 반지하 공방 시절에도 작업을 묵묵히 하던 아버지의 곁에 있었고, 광주로 공방을 옮겼다가 다시 성남으로 돌아와 2015년부터는 성남 중원구의 공방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씨의 작업장은 이천에서 따로 공방을 운영하는 동생과 함께 협업 체제로 운영된다. 소뿔 가공 작업은 주로 이천에서 하고, 이곳은 상설전시장이자 후반 작업장으로 병행해서 활용한다.
수공예 영역에선 효율과 속도를 늘리려고 하는 순간, 장인 문화가 사라진다. 조선의 화각공예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고려의 나전칠기 역시 1천년을 함께해 온 역사가 있지만 산업화를 받아들여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면서 현재는 소수의 장인들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한 명인은 화각공예가 살아남으려면 원래 타고난 화각만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동시대성을 획득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사실 화각공예는 사용하는 재료나 작업 방식, 전반적인 접근성 때문에 대중들과 친밀도를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는 “이 분야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싶지만, 태생적으로 그럴 수가 없는 배경을 생각해야 한다”며 “각종 재료가 엄청난 고가에 구하기 어렵고, 이미 각 분야 최고 수준의 공예가 모여 있는 대상에 화각이 더해져 진정한 예술품으로 거듭나는 구조라서 고유성과 최상급의 품질을 지향하는 예술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간 화각공예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한 명인은 올해도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는 8월24일부터 한 달가량 재단법인 예올과 함께 서울 북촌에 마련할 전시를 위해 하루종일 작업에 몰두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다양한 안료로 색채를 입히던 기존 화각공예와는 다르게, 쇠뿔에 있는 기존 무늬의 결을 살려서 그곳에 깃든 자연스러운 멋을 표현하는 작업들로만 전시장을 채운다.
끝으로 한 명인은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예술 역시 그 존재 의의와 가치가 분명하다”며 “오랜 기간 시대를 막론하고 화각공예를 찾는 분들은 꾸준히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찾을 때 우리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양질의 공예를 알려주는 방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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