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은 안성 미양농공단지 등 페인트 벗겨진 공장 외벽 녹 가득 도내 192곳 중 48곳이 20년 넘어... 노후·규제 발목, 인력 채용 힘들어 입주 업체 “시설·인건비 지원 절실”
경기·인천지역 도시가 낡아가고 있다. 1970년부터 지어진 반지하 주택은 침수 피해의 우려를 한 몸에 받는 곳이며 노후한 산업단지는 급격한 시대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 곳곳 정비사업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질 않는 데다 도시재생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에 경기일보는 노후 도시를 위협하는 장마철인 7월을 맞아 ‘이슈M’을 통해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단지에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이곳 뿐입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노후한 시설을 손 볼 길 없어 걱정입니다.”
안성시 미양면에 위치한 미양농공단지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A씨(72)는 며칠 전 내린 빗물이 남은 수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폭이 채 1m도 안 되는 이 수로는 산단 내 공장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유일한 곳이지만, 1987년 착공 당시 통로를 작게 만든 탓에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넘실대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산단이 경사진 형태로 들어서 있어, 장마 때는 입구 쪽으로 물이 흘러와 곤혹이라고 했다. 그는 “노후화 시설을 개선해 달라고 안성시 등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관련 부서들은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며 떠넘기기만 했다”고 말했다.
과거 국가경제를 이끌며 산업시대 태동과 부흥의 견인 역할을 해온 ‘산업단지’가 노후화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산업단지는 국가산업단지‧일반산업단지‧ 도시첨단산업단지‧농공단지 4개로 나뉘며 현행법(노후거점산단법) 상 20년 이상이 경과한 산단은 ‘노후산단’으로 분류된다.
현재 국내에는 470여개의 노후산단이 존재하며 경기도에는 총 192개의 산단 중 48개가 ‘태어난 지 20년’이 넘었다.
농촌지역에 소득 증대를 위한 산업을 유치‧육성하기 위해 1987년 착공된 안성의 미양농공단지도 그 중 하나다.
이곳의 노후화된 시설은 비단 폭이 좁은 수로 만이 아니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보도블럭은 대부분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입주 기업들의 공장 외벽은 칠이 벗겨진 상태였다. 외벽 창틀에는 녹이 가득했다.
1990~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은 과자를 만드는 중견 식품제조업체와 발효식품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활기를 띠던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업들은 더 세련된 ‘보금자리’를 찾아 하나 둘 떠났고, 단지 입구에 있던 표지판에는 매각과 인수를 반복하며 변화한 기업들의 이름만 덧대어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 남아있는 기업들은 시설의 노후화, 그로 인한 인력난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 2015년 단지 내 공장의 시설을 인수하며 이곳에 들어온 제조업체 B사는 노후화 탓에 인수한 시설의 3분의 1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새롭게 투자하려 해도 기존 시설 노후화와 규제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B사 대표는 “오래된 시설을 바꾸려면 모두 갈아 엎어야 하는데, 노후 산단들은 시설 투자에 대한 혜택이 부족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B사 인근에 위치한 냉면·떡볶이 제조업체 C사는 인력난을 겪고 있다. 내국인을 뽑고 싶지만 산단의 인프라가 오래된 데다 시내와 떨어져 있어, 내국인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C사 대표는 “한 사람이 귀한 입장에서 내국인 채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노후 산단에 대한 인건비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수십년 전만 해도 퇴근 때만 되면 차가 새까맣게 줄지어 나왔는데 이제는 기업이 자꾸 빠져나가기만 하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 청년들 떠나… 인력난 악순환 반복
경제 성장을 이끌던 경인지역 산업단지가 시설 노후화와 인력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가 노후 산단 지원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12일 한국산업단지공단 등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에 소재한 산업단지 192곳 중 착공 후 20년이 지난 ‘노후산업단지’는 총 48곳으로 집계됐다. 착공 후 20년이 넘은 산단은 노후 산단으로 여겨지는데, 시·군별로 보면 노후 산단은 안성시가 13곳으로 가장 많고 평택(8곳), 파주(7곳), 화성(4곳), 김포·양주(3곳) 등 순이었다. 또 인천에는 총 16곳의 산단이 운영 중이며, 이 중 남동국가산업단지와 부평‧주안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는 착공 후 20년이 넘은 대표적 노후 산단이다.
이들 노후 산단의 문제점은 ▲인프라 부족 및 노후화 ▲청년층 기피 ▲생산성·효율성 둔화 등으로 압축된다.
사실, 이 같은 노후 산단의 문제들은 얽히고설켜 있다. 인프라와 시설의 노후화는 청년층의 기피 현상으로 인력난을 유발하고, 오래된 시설 탓에 생산성과 효율성마저 떨어지는 식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경기도의 대표적인 노후 산단인 반월시화산업단지에선 전체 근로자 중 청년층 근로자(15~34세) 비중은 단 12.6%에 그쳤다. 젊은 근로자들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후 산단은 중장년층과 외국인 인력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또 인천의 남동국가산단과 부평·주안한국수출산단도 근로자들의 주차 공간 부족은 물론 문화·편의시설도 적어 청년들에게 외면 당하고 있다. 남동국가산단의 하루 불법주차 대수는 1만여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산단이 오래됨에 따라 성장세가 둔화된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경기연구원의 ‘경기도산업단지 생산성 및 효율성 분석’에 따르면 노후 산단의 열악한 근무환경이나 낮은 기술 수준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분석됐는데, 2014~2017년 도내 산업단업단지 생산량 증감률은 평균 3.4%였지만 4년이 지난 2018~2021년에는 1.6%로 감소했다.
문미성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후 산단은 청년들이 오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후속 인력이 갈수록 사라짐에 따라 쇠락 문제는 더욱 점층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산업단지는 공장이 모여있어 밀도가 높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광활한 부지에 땅을 매입해 공장만 짓던 과거 방식으로는 더 이상 청년층을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노후 산단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현재 경기도에선 반월시화 국가산단과 성남의 일반산단에서 인프라 개선을 위한 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 산단 기업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대개조 사업도 실시되고 있다. 인천시 역시 지난 2019년부터 남동국가산단의 재생사업을, 올해부터는 부평·주안국가산단도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 산업입지과 관계자는 “경기도의 노후 산단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며 “현재 중앙 정부의 공모사업에 적극 참여해 국비를 확보해, 산단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후산단 재생 해외 성공사례 ① 英 트래포드파크 ② 日 오타구 산단
주거·관광·상업·서비스… 다양성 공존
해외에선 어떻게 노후 산단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산단으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까.
노후 산단 재생 사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영국 맨체스터의 트래포드 파크(Trafford Park)다. 트래포드 산업단지는 19세기 말 세계 최초의 산업단지로 개발,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제조업을 기반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탈 산업화’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전통적 의미의 제조업이 몰락하기 시작했고, 트래포드 산단도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영국 정부가 선택한 방식을 기존 산단을 갈아 엎는 ‘전면 개발’이 아닌 ‘재생형’ 방식이었다. 트래포드 파크는 ▲현대적 공업지역 ▲주거 및 지원시설 개발지역 ▲상업 업무의 혼합공간 ▲중소기업 위주의 공업지역 등 4개 지역을 선정해 차별적인 기능을 부여했다.
생태공원 등을 조성해 환경 기반시설을 재정비했고, 입주기업들의 정착과 성장을 위해 산업 간 연계를 지원하는 비즈니스 센터 등을 마련했다. 또 도시 외곽의 폐허 부지에는 유럽 최대의 쇼핑·레저 단지인 ‘트래포드 센터’ 등을 조성,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상업·관광이 공존하는 산업 구조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 도쿄의 오타구 산단 역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의 대표적 산업단지 중 하나였지만, 공업지역 쇠퇴에 따른 여러 도시 문제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오타구 지역 쇠퇴를 막기 위해 선택된 방식은 주거·업무·서비스가 공존하는 복합 용도의 개발이었다.
이를 위해 아파트형 공장이 건설됐고, 서비스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정책이 펼쳐졌다. 특히, 사람에게 친화적이고 주변 환경과 마을과 공존하는 비전을 통해 새로운 산단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구형 클러스터의 특징을 가지면서도 일본 특유의 협력 문화를 바탕으로 독특한 산업단지를 형성한 것이다. 그 결과 중소기업도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전문가 제언 “인프라 확보·민간 투자 활성화 필요”
전문가들은 노후 산단이 되살아나기 위해선 ▲인프라 확보 ▲산업 재구조화 ▲적극적인 투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청년층을 사로잡기 위한 인프라 확충을 강조했다. 마 교수는 “산업단지가 쇠퇴하는 이유는 해당 산업의 약화와 맞물려 있고, 도심에서 떨어져 마치 회색빛 ‘깍두기’처럼 공장만 밀집해 있는 형태로 이루던 경제발전은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했다”며 “제조업이라 하더라도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상업시설, 교통접근성을 갖춰 청년들을 끌어들이고,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후 산단 재생을 위해 규제 완화와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원빈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분적으로 빈 공장 등을 새로운 복합형 산업시설로 탈바꿈시키는 점진적인 ‘점개발’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를 위해선 지원시설, 편의시설 등이 입주하는 절차에 대한 규제 해소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자금만으로는 구조 고도화 등의 리모델링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 진입 요건 완화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흐름에 발 맞춰 노후 산단을 개편을 친환경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성택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노후 산단은 현재 전세계에서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이 강조되는 흐름과 달리 오염집약산업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며 “경기도에서 이러한 노후 산단을 환경친화적으로 만들어 모범지구로 육성한다면 선도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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