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이그노벨상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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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은 노벨상을 풍자해 만든 상이다. 괴짜 과학상이라고도 불린다. 진짜 노벨상을 탄 수상자가 시상하는 가짜 노벨상이다. 상 이름은 영어로 고상하다는 뜻의 ‘노블(nobel)’의 반대 격으로 품위가 없음을 뜻하는 ‘이그노블(ignoble)’에서 따 왔다.

 

이그노벨상은 미국 하버드대의 유머 과학잡지인 ‘애널스 오브 임프로버블 리서치’가 1991년 제정했다. 매년 ‘진짜’ 노벨상에 앞서 수상자를 선정, 하버드대 샌더스극장에서 시상한다. 고정관념이나 일상적 사고로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 기발하고 이색적인 업적에 가치를 두고 수상자를 정한다. 시상 부문은 총 10개 분야다.

 

그동안 이그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상을 거부하는 과학자도 많았다. 웃음거리가 되는 게 싫어서다. 반대로 이를 즐긴 과학자도 있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안드레 가임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0년 자석으로 개구리를 공중에 띄운 연구로 물리학상을 받았다. 가임 교수는 이그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네덜란드에서 하버드대로 날아가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10년 뒤인 2010년 그래핀 합성 공로로 진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올해 이그노벨상 수상자에 한국인이 포함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비뇨기의학과의 박승민 박사다. 그는 배설물을 통해 건강 상태를 분석할 수 있는 ‘스마트 변기’를 발명해 공중보건 부문상을 받았다. 변기에 내장된 카메라와 센서 등이 배설물의 색깔, 양을 분석한다. 전염병 감염 여부까지 판별할 수 있는 이 똑똑한 변기는 2020년 ‘네이처 생체의공학지’에 발표된 바 있다.

 

박 박사는 과학자가 변기와 배설물을 진지하게 연구한 것이 우습다고 여겨져 상을 받았지만, 대소변으로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전염병 감염까지 추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평가 받은 결과로도 해석된다. 물리학자에서 의학 연구자로 변신한 박 박사의 업적을 ‘웃긴’, ‘괴짜’ 노벨상이라 이름 붙이기엔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 진짜 노벨상 수상 소식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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