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지금 여기에”…게임 속에서 촬영한 다큐 ‘니트 아일랜드’ [DMZ Docs 탐색전]

영화 ‘니트 아일랜드’ 온라임 게임 내부서 다큐 제작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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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니트 아일랜드'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가상 세계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을까?

 

프랑스 출신의 세 남자 에키엠 바르비에, 길렘 코스, 캉탱 렐구아크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게임에 접속했다. 이들은 각각 인터뷰어, 카메라맨, 테크니션의 역할로 플레이어들과 963시간 동안 지내면서 소통을 시도했다. 무턱대고 총구를 들이대는 이들부터 진솔한 내면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아이템을 챙겨주는 이들까지. 이들이 만난 사람들은 가상 현실 속 아바타인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가?

 

지난 14일 개막해 21일까지 이어지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화제작 ‘니트 아일랜드’는 온라인 게임 내부에서 제작된 독특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감독들은 가상과 현실의 구분에 마냥 매달리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일을 각자가 인식하고 수용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지난 17일 세 명의 감독 가운데 영화제를 맞아 내한한 캉탱 렐구아크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게임 속에서 역할을 분담해서 다녔지만, 실제로 영화 제작 과정에서는 세 명이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는 등 협업으로 진행됐다.

 

세 감독은 7년 전 프랑스 몽펠리에 국립 예술 학교에서 만나 영화에 관한 교류를 이어갔다. 틈틈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온 이들은 ‘니트 아일랜드’를 연출하기 전에도 게임 ‘Grand Theft Auto V(GTA 5)’속 가상 세계를 담아낸 영화 ‘말로위 드라이브’를 제작했고, 그때의 경험이 이번 작업으로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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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무국에서 캉탱 렐구아크 감독이 경기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송상호기자

 

렐구아크 감독은 “비디오게임과 같이 자란 세대이다보니 자연스레 게임이 대화의 화두로 소환될 때가 많았고, 가상 세계가 어떻게 하면 현실과 맞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디어가 확장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좀비 서바이벌 오픈 월드 게임 ‘DayZ’를 다큐멘터리의 무대로 삼은 데 대해 렐구아크 감독은 “고립된 인물 한 명보다는 게임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집단, 무리들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며 “생존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임의 작동 원리가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렐구아크 감독은 한 여성 플레이어를 만나 인터뷰하다가 현실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장면도 언급했다. 마침 그 유저에게 현실 속 삶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찰나에 실제 유저가 키우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모니터 앞을 벗어나 아이를 달래주러 가는 엄마가 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겼다.

 

그는 “우리는 모두 이 순간을 꼭 영화에 넣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 순간 만큼 잘 설명하는 구간이 없다고 느꼈다”며 “이 게이머들이 실제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당신의 옆집 이웃처럼 아주 가까운 이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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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니트 아일랜드'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유저들은 함께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달리거나, 한밤중에 댄스 파티를 열어 흥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촬영된 화면에 따로 입힌 삽입곡이 아니다. 실제로 유저 중 하나가 음악을 마이크에 대고 증폭시켜 틀었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함께 공유했던 음악이다. 그들의 감정과 생각들, 분위기를 관객들 역시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연결 통로를 만들어냈다.

 

한 게이머 커플은 현실 속에서 과학자와 예술가로서 만났지만, 이곳에선 자연을 만끽하고 차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등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현실을 이 게임 속에서 정의했다. 감독은 이를 두고 ‘그건 현실이 아니다’라고 제동을 걸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가 가상의 영역에서도 성립될 수 있을까? 감독이 생각하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대답을 들어봤다.

 

렐구아크 감독은 “극영화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정해둔 채 목적지로 향해가는 여정이라면, 다큐멘터리는 목적지가 설정되지 않은 채로 이어지는 우연, 변수, 만남의 연속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큰 차이가 나타난다”며 “가상 현실이든 실재하는 세계든, 삶 속에 깊이 침투할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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