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재명 단식, 종료 명분도 어색했다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기록이 남았다. 정치인의 단식 투쟁 기간이다. 이재명 대표가 23일 단식을 종료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시작해 24일 만이다. 가장 길었던 정치인 단식은 23일이다. 1983년 5월18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3일간의 단식투쟁 역사가 있다. 민자당의 내각제 개헌 추진에 대한 항거였다. 이 대표의 이번 단식은 적어도 기간에서 최장 신기록이 됐다. 그런 만큼 대략의 정리가 필요한 역사 속 사건이다.

 

YS는 언론 통제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 복직, 정치 활동 금지 해제, 대통령 직선제 등을 요구했다. DJ는 민자당의 내각제 개헌 추진 포기를 내걸었다. 겉으로는 정치 개혁을 향한 거창한 구호였다. 공교롭게 두 김씨 모두 훗날 대통령이 됐다. 성공한 정치인의 역경을 상징하는 전설처럼 남아 있다. 하지만 명분까지 그렇지 못했다. 다분히 느닷없고, 억지스러운 측면도 있었다.

 

이 대표의 단식 명분은 어떤가. 윤석열 정부의 민생 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표명 및 국제해양재판소 제소를 요구했다. 국정 쇄신 및 개각 등을 요구했다. 이 역시 느닷없고 막연한 정치 구호의 측면이 있다. 대통령 사과가 야당 대표의 단식 명분일 순 없다. 일본이 결정할 오염수 방류도 한국 야당 대표가 목숨 걸 일은 아니다. 야당 대표가 장관 바꾸라고 단식하나. 잘 와닿지 않았다.

 

명분이라는 측면에서 두 김씨와 이 대표를 차별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확실하면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단식하는 정치인에 대한 사법처리 진행이다. 두 김씨에게는 본인 또는 가족과 연루된 형사사건이 없었다. 이 대표에게는 바로 이게 있었다. 검찰 출두, 체포동의안 등이 예정돼 있었다. 실제로 단식 중에 소환, 구속 영장 청구, 체포동의안 의결이 다 진행됐다.

 

체포동의안 의결을 앞두고는 ‘부결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본인 신병에 대해 직접 선처를 요구한 셈이다. 이러다 보니 단식 종료의 명분까지 이상해졌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하루 뒤 단식을 종료했다.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26일을 3일 앞두고서다. 검찰 수사와 다르다. 본인 또는 변호인의 치열한 항변이 필요한 절차다. 단식 종료 이유를 ‘의료진의 강력한 단식 종료 권고’라고 했다. 글쎄다. 세상에 단식을 종용하는 의사는 없지 않겠나.

 

성남시장이던 2016년 6월에도 단식했다. 지방재정개혁에 반대하는 투쟁이었다. 11일 굶은 이재명 당시 시장이 이렇게 말했다. “죽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다 같이 살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켜온 선배들의 희생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목숨 건 투쟁’이 아니라 ‘살기 위한 투쟁’이라는 설명이다. 어쩌면 ‘어색한 단식과 종료’를 이해시켜주는 발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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