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자립의 진정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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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선 경기도장애인복지회장

자립(自立)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서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 어떤 날도 혼자서 이뤄지는 날이 없다. 엄마가 된 딸의 옆에도 든든한 조력자인 친정 엄마가 있고 성인이 된 아들딸의 궤적에도 여전히 부모가 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족, 친구, 동네, 학교, 직장, 국가 등 소속이 필요하다. 개인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안전장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10월27일 양주시 소재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장애인식생활체험관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발달장애인 자립형 식생활교육 초급반 수업을 마쳤다. 교육을 진행하기 전에는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에 대한 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무척 컸다. 특히 날카로운 칼과 불을 사용하는 과정에 안전사고 걱정은 더 컸다. 한 번도 칼을 사용해보지 않은 발달장애인도 있었다. 식칼을 들고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쩔쩔매는가 하면 기다란 대파를 들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장애인도 있었다. 다양한 행동을 보였지만 염려와는 다르게 서로 도우며 신체 움직임을 통한 결과물의 완성도에 대한 자존감과 표현 증진에 긍정적이었다.

 

파주의 한 시설에서 근무하는 A씨는 소근육이 미약해 스티커를 붙이는 데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의사를 확인한 후 대신 스티커를 붙여주기도 했다.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에게 음식을 먹여 줄 때면 식판에 담긴 음식에 그 시선이 머무는데, 그것은 먼저 먹고 싶다는 뜻이다. 튀김을 유난히 좋아하는 발달장애인이 식사가 마무리됐어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는 것은 더 먹고 싶다는 뜻이다. 그들도 그들만의 언어로 충분히 의사를 전달한다.

 

우리 사회는 특히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이 장애인 거주 시설이 아닌 동네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크다. 발달장애인에게 자립이라는 건 꿈 같은 이야기라고, 발달장애인이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냐고, 혼자서 요리는 할 수 있냐고, 혼자 살다가 화재를 내는 게 아니냐며 두려워한다. 이 모두 합리적이지 못하다.

 

자립이란 ‘온전한 나를 가지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적절히 이용할 수 있어야 ‘자립의 진정한 의미’에 가까워진다. 자립은 한자어의 뜻풀이처럼 고정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자립의 개념은 열 가지가 될 수 있다. 세상에 유일한 개인이 타인에 의존하고 관계에 의지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 자립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거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당연히 관련법뿐 아니라 다양한 정책, 사회적 합의와 같은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발달장애인이 거주 시설이든 아니든 자기 선택권을 가지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여러 방면으로 관계를 맺어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도록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통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을 바꿔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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