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국가 책임” 판결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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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섭 논설위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처음으로 인정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9부는 지난 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없다’며 기각했던 1심 판결을 뒤집어 선고했다. 8년 동안 이어진 항소심 끝에 나온 결론이다.

 

재판부는 “환경부 장관 등이 이 사건 화학물질(PHMG·PGH)에 대해 불충분하게 유해성 심사를 했고, 그 결과를 성급하게 반영해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고시했다. 이후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안전성을 보장한 것과 같은 외관이 형성됐고, 이 때문에 화학물질이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수입·유통돼 지금과 같은 끔찍한 피해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는 가습기살균제 미신고 사례를 포함해 1994년부터 2011년까지 2만명이 사망하고 95만명이 폐질환을 비롯한 건강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했다. 전례 없는 규모의 화학물질 참사다. 법원은 헌법상 국가 책무에 따라 국민의 건강·생명·신체를 지키기 위해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은 경우도 국가배상법 제2조의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도 국가의 책임이 거듭 인정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20-2부는 지난 7일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가족 등 55명이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국가 책임을 물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일부 생존자들의 후유장애도 인정해 배상액을 높였다.

 

4월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가습기살균제 손해배상 소송은 이번 판결까지 10년이 걸렸다. 이태원 참사 관련해선, 윤석열 대통령이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정부를 상대로 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런 악습이 되풀이될지 안타깝고 답답하다. 정부는 국민 생명과 안전 보호라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자세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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