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인천과 수원에서 법원장이 직접 재판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신속 재판’을 내세운 조희대 사법부의 의지가 나타난 법정 풍경이다. 30년 가까운 관록의 베테랑 법관들이 사법 최일선에 나선 것이다. 배당받은 사건도 재판이 오래 지연된 장기미제사건들이다. 그래서 ‘법원장 장기미제 재판부’로 불린다고 한다. 이제라도 하릴없이 늘어지는 재판으로 심신을 소모했던 국민 고통이 좀 덜어질 것인가.
김귀옥 인천지방법원장은 이날 민사항소7부를 이끌며 9건의 장기미제 재판을 진행했다. 민사항소7부는 인천지법이 새롭게 구성한 재판부다. 그간 오래 해결되지 않았던 재판 100건이 배정됐다. 항소 사건에서는 통상 항소심으로 넘어온 지 1년6개월이 지나면 장기미제사건으로 분류한다. 이날 민사항소7부에서 변론절차가 종결된 1건은 2022년 1월 접수된 사건이다. 이날 재판으로 오는 4월16일엔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다. 인천지법은 서울중앙지법 다음으로 가장 많은 미제사건을 안고 있다.
같은 날 수원지방법원에서도 김세윤 법원장이 민사10부를 맡아 첫 재판을 진행했다. 이 재판부도 민사항소 장기미제 전담부다. 첫 기일조차 열리지 않았던 민사항소 사건들을 주로 배당받았다. 김 법원장이 맡은 재판부는 최근 7건의 재판을 열어 3건의 변론을 종결, 선고일을 4월18일로 잡아놓았다.
재판 지연 문제는 현 사법부가 직면한 최대 숙제다. 재판 지연은 정의 실현의 지체로만 끝나지 않는다.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재판 때문에 국민들 삶이 꽁꽁 묶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계사법정의프로젝트(WJP)가 매년 내놓는 142개국 ‘법치 지수’가 있다. 한국은 지난해 13위(민사), 16위(형사)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7위(민사), 13위(형사)로 상위권이었다. 불합리한 소송 지연이 주된 감점 요인인 조사다. 김명수 사법부를 거치면서 재판 지연이 고질화했음을 보여준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달 초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했다. 신속 재판을 위해 장기미제사건은 법원장이 직접 관리토록 했다. 사건 처리 속도에 대한 적정 기준도 내놓는다고 한다. 법관이 모자란다면 의사처럼 증원해야 한다. 2027년까지 법관 정원을 370명 늘리는 법안도 이미 발의돼 있다. 국회만 가면 낮잠 자는 법안이 너무 많으니, 입법 지연이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신속 공정한 재판은 국민들에게 마땅히 제공해야 할 사법부의 공공서비스다. 그런 엄중한 서비스를 독점했다고 해서 차일피일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법복이 주는 권위나 명예, 재화까지 모두 국민들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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