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 작가 프로젝트 선정 문단문학 벽 허물고 새 문법 시도 자본주의 틀 잡고 ‘하인학교’ 탄생
경기도내 등록된 예술인은 20일 기준 6천595명, 그중 문학활동을 하는 작가는 878명이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출판업은 늘 위태로웠다. 그 업을 ‘업’으로 삼은 문학가들은 위태로움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시선과 언어로 누군가의 마음을 환기시키고 때론 바꿔 왔다. 경기문화재단의 ‘2023 경기 문학작가 확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된 작가 3인을 만났다. 분초 단위도 쪼개 쓴다는 ‘분초사회’. 쓸모와 효용성이 앞장서는 시대에 삶의 여유와 그 어떤 무용함은 더욱 설 자리가 없지만 이들은 쓸모와 무쓸모를 더욱 구분짓는 지금이야말로 문학이 더 빛나고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첫 번째 만나본 작가는 문단 문학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문법을 시도한 김이은(필명) 작가다.
퇴로가 없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한 만큼 결정은 쉬웠다. ‘어차피 그만둘 마당에 뭔들 못할까.’
“이게 아니면 사회적으로 김이은은 죽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초봄이 시작된 어느 날 광주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이은 작가는 인터뷰가 시작된 지 10여분 만에 의외의 말을 했다. 지난 2000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일리자로프의 가위’의 당선을 시작으로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 ‘코끼리가 떴다’, ‘어쩔까나’, ‘검은 바다의 노래’, ‘11:59PM 밤의 시간’ 등 중견작가로 쉼 없이 작품을 써온 그가 사회적인 이름이 없어질 고민을 했다니.
필력으로 버티며 문단 문학을 이어왔지만 경력 20년 차가 넘으니 현타가 왔단다. 웬만한 직장인이 경력 20년 차라면 부장은 달고, 임원도 됐을 텐데. 글을 계속 써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과 고민이 들었다.
그때 마침 김 작가에게 ‘장르소설을 해보자’란 제안이 들어왔다. 소설 IP(지식재산권)의 멀티콘텐츠화 흐름으로 장르적 특성을 문학적 필체로 풀어내는 작가들의 작업이 영미권에선 이미 형성돼 있었지만 국내에선 낯선 풍경이었다.
20년간 문단 문학을 해오던 그가 경계를 허물고 장르소설을 쓴다는 것, 협업 시스템의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그만둘 예정’이었던지라 낭떠러지에 서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무작정 쓰고 생각했다.
떠올린 주제는 전 세계가 당면한 자본주의였다. “이 거대한 주제를 한 번에 다 끝낼 순 없을 테고 3부작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3부작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성공이란 생각도 했죠.”
자본주의로 틀을 잡고 얼마 후 눈 앞에 ‘하인학교’란 단어가 갑자기 확 떠올랐다. 이후 벼랑 끝에 몰린 한서정이 하인학교에 입학한 후 1등 졸업생이 돼 재벌이 될 기회를 얻고자 경쟁하는 이야기가 술술 풀렸다. 불평등과 양극화, 계급과 욕망의 문제를 박진감 넘치게 다룬 장편 ‘하인학교’는 2023년 출간되자마자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5곳에서 판권 비딩이 들어왔고 현재 소설로서는 한국 최고가에 판매돼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있다.
“책이 잘 됐다는 기쁨보다는 작가로서 사회적 이름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컸다”는 그는 하인학교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더욱 많은 독자들과 자신 소설과의 접점을 마련했고 소설가들이 다양하게 설 수 있는 새로운 기회, 문학의 다양성을 동료들에게 보여줬다.
출판 시장이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고 작가들의 사정이 어려운 것 역시 여전하지만, 김 작가는 오히려 지금이 문학과 작가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사례가 늘어나는 만큼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며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많아졌으니, 시장은 나날이 풍부해지고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창구와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 거죠. 이런 게 새로운 흐름 아닐까요?”
자본주의 3부작 완성을 위해 새 소설을 집필 중인 그는 앞으로 한국 소설의 저변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작품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문단용과 장르용 소설의 경계는 점차 흐려질 거라 생각해요. 국내에 실력있고 장르적 감각이 있는 작가들이 제대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없는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한국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것 처럼 한국 소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러나저러나 소설 쓰는 게 다시 너무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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