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정말 인간에게 중요할까? 책 한 권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해주지도, 세금을 대신 내주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글쓰기나 독서를 하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 없다”며 문학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프랑스의 지성’으로 불리는 작가·영화감독인 필리프 클로델(62)은 지난 21일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만남의 자리에서 청중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문학을 통해 스스로를 알고 사회와 세계를 알게 되기에 문학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
이날 오전 10시30분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필리프 클로델 작가·영화감독과의 만남’은 주한프랑스대사관, 프랑스학회,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경희대학교 아프리카연구센터가 주관해 마련됐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공쿠르 문학상 -한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클로델 작가를 한국에 초청했다. 이날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행사는 클로델의 한국 일정 중 경기도를 방문한 유일한 자리다.
아내 도미닉 클로델과 동행한 필리프 클로델은 100여명의 학생, 시민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그의 문학세계는 물론 현재의 문학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폭넓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1부 강연은 클로델이 던진 질문으로 시작됐다. 클로델은 청중을 향해 “문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어 그는 “문학이 인간에게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문학을 통해 스스로를 알고 사회와 세계를 알게 되기에 문학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클로델은 작가가 인간 내면을 분석하고 파헤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영혼의 외과의사”라고 표현했다. 외과의사가 환자의 내부를 들여다보듯 작가는 산 사람의 내면을 해부한다. 또한 그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으며 누구의 허가도 받을 필요가 없고, 글쓰기가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라는 것이다.
2부에서는 경희대 프랑스어과 학생들과 클로델의 대담이 진행됐다. 이날을 위해 약 2주간 클로델의 소설과 영화를 감상하고 그의 생애를 공부한 4명의 학생들은 클로델과 마주 앉아 그의 작품 세계와 한국에서 새로 출간된 그의 소설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한 학생은 작가의 고향인 동발-쉬르-메르트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됐는지 질문했다. 이에 대해 클로델은 “10년 전 찍었던 ‘어린 시절’이라는 영화를 자신의 고향에서 촬영했다”며 “고향이 1,2차 세계대전 때 대규모 전투 장소로 자주 사용돼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다. 유년 시절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실제 클로델의 소설에선 ‘전쟁’은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세상이 ‘이상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에 클로델은 “나에게 기적과 같은 해결법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돼보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 노력하며 이를 위해 예술·학문적 교류를 활발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필리프 클로델은 장르를 넘나들며 인간성을 탐구하는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인간의 복잡하고 어두운 내면 세계를 소설, 영화로 형상화 하는 인물로 프랑스의 지성으로 불린다. ‘회색 영혼’, ‘브로덱의 보고서’ 등 여러 작품을 집필했으며 산문집 ‘향기’는 그해 가장 뛰어난 산문에 수여되는 장 자크 루소상을 2013년에 수상했다. 그가 감독한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는 2009년 영국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문학상의 종신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최근에 펴낸 그의 열네 번째 장편 소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 지난 15일 한국에서 출간됐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 개의 형상을 한 가상의 섬에서 시체 세 구가 발견되면서 섬 주민들이 겪는 공포와 갈등을 다룬다.
작가는 지난 몇 년간 유럽이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던 현실과 난민에게 비수용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 하기 위해 시체를 흑인으로 설정 했다고 밝혔다.
섬 주민들은 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온천 사업을 위해 시신의 발견 자체를 은폐하려고 하지만 이는 오히려 섬 전체에 혼란과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은 사람들의 복합적인 면모가 갈등의 주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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