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에서 각 정당이 쏟아낸 공약 중 상당수가 퍼주기식이다. 누가 더 많이 퍼주는가 경쟁이라도 하듯 쏟아냈다. 전 국민에게 돈을 뿌리고, 세금을 깎아주고, 여기저기 개발하겠다는 공약이 수천 건이다. 나라 곳간은 비어 가는데 선심성 공약에 수백조원이 들어갈 판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 과정에서 일부 생활필수품 부가가치세 인하(10%→5%)를 제안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 국민 대상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제안했다.
지난해 87조원의 재정 적자가 발생했는데도 여야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마구 질러댔다. 올해도 세수 펑크가 예상돼 국가 살림살이에 허리띠를 조여야 할 판인데 무책임하다.
개발 공약이 엄청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철도와 도로 지하화 공약을 내걸었다. 국민의힘은 한강 남북의 자동차전용도로 모두 지하화를 약속했고, 민주당은 서울 올림픽대로 지하화를 공약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6개 정당의 개발공약은 모두 2천239건이다. 소요 예산은 최소 554조원에 이른다. 이것도 재원을 밝힌 357건(16%)에 한해서다. 나머지 1천882건을 포함하면 액수를 가늠하기 어렵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24차례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내세운 정책은 후속 과제만 250여개에 달한다. 야당은 그 재원이 1천조원 수준이라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재원 마련 등 과연 실현 가능한 것들인지 의구심이 든다. 건전 재정을 지향해야 할 대통령실과 정부마저 퍼주기 경쟁에 뛰어든 게 황당하다.
총선이 끝났다. 나라 살림이 거덜나지 않도록 공약의 옥석을 엄격히 가릴 필요가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확대간부회의에서 “기재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 공약을 한정된 재원에서 소화하기 위해선 기재부가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미다. 선거가 끝난 만큼 재원과 실현가능성을 냉철히 점검해 공약을 걸려내야 한다.
기재부는 정치권에 휘둘리면 안된다. 무분별한 감세·개발 정책부터 걸러낼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에 닥친 숙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중동 불안으로 유가가 치솟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선거 이후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도 예상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도 심상치 않다. 각종 경제 현안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여야가 쏟아낸 공약 중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취해야 한다. 재정건전성을 고려한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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