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우리 안의 이주

한지수 인천고령사회대응센터 시니어연구팀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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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인천시에 사는 이주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사할린이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한 고령의 동포 여섯 분을 인터뷰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연구 주제를 한참 벗어나곤 한다.

 

먹고살기 위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을 향해 걷고 또 걸어야 했던 할머니.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대륙횡단 화물열차에서 견뎌야 했던 추위와 공포. 중앙아시아 땅에 버려지듯 옮겨진 아버지가 맨손으로 땅을 파고 심었던 볍씨. 굶주림과 풍토병으로 속절 없이 죽어 나가던 형제자매들. 이방인으로 살지 않기 위해 돌아온 할아버지의 고향 한국에서 다시 겪는 이방인으로서의 아픔. 한국어를 할 수 없어 벙어리가 된 것 같은 답답함.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저쪽 고향’에 사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조선에서 연해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다시 연해주와 유라시아 대륙을 돌아 함박마을에 다다른 길고 멀고 험난했던 이주의 기억들이 끊임없이 풀려나온다. 연구의 주제보다 더 절실한 이야기들을 차마 끊어낼 수 없다.

 

낯선 땅에서 온몸이 부서질 듯한 노동을 견디며 피땀 묻은 돈을 가족에게 보내곤 하던 우리의 디아스포라가 ‘고려인’과 ‘사할린동포’만은 아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며 노예처럼 살았던 하와이 이민자, 그들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 ‘송출된’ 이른바 ‘사진신부’, 칼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지녔다는 애니깽 농장에서 일하던 멕시코 한인. 척박하기만 한 만주의 황무지를 개간했다는 중국 동포.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임을 당한 식민지 조선의 국민,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줄타기와 같았던 파독 광부,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고 자기 몸집의 두 배는 되는 서양인을 돌보던 파독 간호사....

 

‘이주’라는 말은 이렇게 우리 안에 가득하다. 두어 다리만 건너면 이주해 간 피붙이가 있고 두어 집만 지나치면 이주해 온 이웃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주해 온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이런 마음을 바꿔볼 요량이라면 지난 20일 기념한 세계인의 날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자. 올해로 12회를 맞은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알아보자. 이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민사박물관을 둘러보자.

 

그렇게 한다면 40도가 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깻잎을 따는 캄보디아 젊은이를, 냉동생선을 손질하느라 온몸이 꽁꽁 언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를, 이삿짐을 날라주는 몽골 청년을, 아이에게 타갈로어 한마디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필리핀 엄마를, 하루 열두 시간을 단식하며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중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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