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내 이동 경로는 파악 안돼... 이웃집 침입·성범죄 재범 ‘노출’
출소한 범죄자들을 관리하는 전자발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 감시에 구멍이 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가 수원으로 이사를 해 지역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지만 전자발찌의 허점으로 재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13일 법무부에 따르면 전자감독제도는 성폭력, 미성년자, 유괴, 살인 등 특정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해 전자발찌 등 위치 추적 전자장치를 신체에 부착하는 제도로 지난 2008년 도입됐다. 법원으로부터 부착 명령을 선고받은 사람은 특정 장소 방문 금지, 특정 시간 외출 금지 등 특별준수사항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전자장치의 허점으로 감시망에 구멍이 난 상황이다. 특히 범죄자가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세세한 이동 경로가 파악되지 않는다. 범죄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 밖으로 나가 건물 내에서만 움직인다면 이를 알 수 없다. 때문에 거주지 내에서 범죄가 다시 발생해도 이를 감지할 수 없다.
지난달 14일 수원으로 거주지를 옮긴 박병화는 현재 수원의 한 오피스텔(251세대)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 오피스텔 안에서 박병화가 집 밖으로 나가 다른 층에 들어가도 보호관찰관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박병화가 과거 혼자 사는 20대 여성들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을 저지른 것을 고려했을 때 현재 오피스텔 건물 안에서 다시 성범죄를 저질러도 알 수 없는 셈이다.
특히 전국의 범죄자들이 이러한 특별준수사항을 어긴 건수는 3만6천253건에 달한다. 최근 5년간 특정 장소에 접근 및 출입이 금지된 범죄자가 준수사항을 위반한 건수(전국 기준)는 2018년 6천842건, 2019년 7천357건, 2020년 6천817건, 2021년 6천609건, 2022년 6천120건이다.
최근에는 아동성폭행범 조두순이 오후 9시 이후 야간 외출 금지 명령을 받았음에도 이를 어기고 집 밖으로 나와 징역 3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전자감독 대상자에 대한 주거지를 한정해서 관리할 수 있다"며 “출입금지 등 준수사항을 위반하면 위치추적 관제센터에 경보가 발령되고 보호관찰관이 즉시 현장에 출동해 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공포의 ‘성범죄 이웃’… 주민들 오피스텔 ‘대탈출’
“박병화가 오피스텔 안에서 다시 성폭행을 해도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요?”
‘수원 발발이’로 불리는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가 수원으로 거주지를 옮긴 지 한 달이 된 가운데 주민들은 여전히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더욱이 박병화를 감시하기 위해 채운 전자발찌마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주민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8시께 수원특례시 팔달구 인계동의 한 오피스텔. 박병화가 입주한 오피스텔 인근엔 수원시가 설치한 24시간 초소와 순찰차, 기동순찰대 차량이 세워져 있었고, 주변에는 경찰이 2명씩 순찰을 돌고 있었다. 또 오피스텔 복도와 엘리베이터, 비상계단 등에 폐쇄회로(CC)TV가 추가로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해당 오피스텔은 주거복합 건물 특성상 상가가 있는 층마다 공중화장실이 있고, 지하 주차장이 6층까지 있어 CCTV 사각지대가 많아 범죄에 쉽게 노출돼 있었다.
특히 1층부터 4층까지 미용실과 피부과 등 상업시설이 입점해 있어 여성 유동 인구가 많고, 5층부터 20층까지 직장 등의 이유로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며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주민 A씨는 “박병화가 전자발찌를 차고 있다고 해도 한밤중에 바로 옆집에서 범죄를 저지른다면 모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운데, 밤에는 돌아다닐 엄두조차 못 낸다”고 토로했다.
실제 박병화 전입 후 이곳에 입주한 피부과의 매출은 한 달 전과 비교해 30%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혼자 사는 여성들의 이사도 이어졌다. 이곳의 평균 월세가 70만원선에서 55만원까지 떨어졌지만 한 달간 월세 계약 취소 건수만 20건이 넘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박병화가 이곳에 산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월세 계약 취소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며 “월세 계약기간이 남았는데도 이사를 간 여성도 있고, 전세 계약을 했다가 500만원에 달하는 계약금을 포기하고 취소한 여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해당 오피스텔 측은 입주민들을 상대로 ‘박병화 거주가 공동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집합 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 박병화 퇴거를 요청하는 집회 등을 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수원특례시 관계자는 “박병화 전입 이후 시민 안전센터 설치, 청원경찰 24시간 배치, CCTV 및 비상벨 추가 설치 등을 조치했다”며 “입주자 안심케어 서비스를 지원하는 등 입주자와 면담을 통해 시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 제언 “출소 전후 성범죄자 관리 시스템 필요”
전자발찌의 허점으로 범죄가 계속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감시에 한계가 있는 전자발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체계적으로 성범죄자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전자발찌는 행동 감시가 되지 않아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자발찌는 행동 감시가 되지 않는 장치다. 외출을 한다고 해도 성범죄자가 살고 있는 건물 내에만 있으면 사실상 외출 제한 시간에 이동을 하거나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도 이를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사실상 완전한 밀착 감시가 어려우며 이를 악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현재 법으로서는 거주지 제한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출소하기 전후로 범죄자들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치료감호와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성범죄자들이 출소 후 사회에 나오기 전 성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하거나 형기가 끝나더라도 시설에서 오랜 시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성범죄자들이 출소와 이사를 할 때마다 주민들의 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주거지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다시 논의,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법무부는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국가가 운영하는 시설로 지정할 수 있다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입법예고했지만 지난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전자발찌는 세세한 이동 경로가 파악되지 않는다. 결국 재범을 하지 않도록 보호관찰관의 계도와 상담 등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성범죄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거나 가족과 함께 살아도 재범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성범죄는 재범 위험이 높은 범죄인 만큼 법안을 개정해 출소 후 일정 시설에만 살 수 있도록 거주지 제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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