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는 기다림…민영버스터미널 줄폐업에 주민 불편 [집중취재]

극심한 경영난에 도내 터미널 사라져...운행횟수 줄고 더위 피할 가림막도 無
노인 등 교통약자 불편↑…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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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내 민영시외버스터미널이 폐업하거나 폐업 위기에 처하면서 교통약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사진은 적자운영으로 폐업 위기에 처한 서수원터미널. 김시범기자

 

“버스터미널이 없으니 우리 같은 노인들은 이동하기가 너무 불편하고 힘들어요.”

 

경기지역내 민영버스터미널이 극심한 경영난에 처해 폐업에 내몰리면서 교통 약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월과 올해 1월 각각 폐업한 성남터미널과 송탄터미널을 찾아 도민들의 험난한 대중교통 이용 여정을 경기일보가 동행 취재했다.

 

10일 낮 12시께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사는 김정순 할머니(가명·74)가 손주의 생일 축하를 위해 나선 길은 시작부터 고난길이었다. 김 할머니가 지난해 1월 폐업한 성남터미널 임시 매표소에서 마주한 가장 빠른 제천행 버스 시간표는 1시간 반 뒤 출발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좌석 예매 방법을 모르는 김 할머니가 버스를 이용해 제천으로 이동할 방법은 현장 발권뿐이지만, 경영난으로 터미널이 폐업하며 운행 횟수가 대폭 줄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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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성남터미널 임시 매표소의 승차장에서 김정순 할머니(오른쪽)가 대리석 조형물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오종민기자

 

지루한 기다림에 더해 폭염과의 사투도 문제였다.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임시로 도로변에 설치된 승차장에는 할머니가 앉을 간이 의자와 더위를 피할 가림막조차 없었다. 김 할머니는 승차장 근처 대리석 조형물에 앉아 간신히 물을 마시며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1시간 25분 뒤 길고 지친 기다림 끝에 제천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렇게 오후 3시35분. 3시간 반만에 김 할머니는 제천에 도착했다. 김 할머니는 “터미널이 없어서 노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졌다"며 "버스도 자주 안 오는데 이렇게 더운 날이나 비 오는 날에는 특히 기다릴 곳도 없어서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날 오후 송탄시외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정영일 할아버지(가명·80)는 비좁은 간이 대기실 밖에서 40분이 넘게 뙤약볕 아래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한국을 방문 후 다시 외국으로 떠나는 딸과 손주를 배웅하고자 인천 공항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찾은 정 할아버지는 이미 꽉 차 있는 간이 대기실 안을 수차례 살펴보다 결국 발길을 돌린 뒤 그늘막 하나 없는 외부에서 내리쬐는 태양을 그대로 맞으며 연신 땀방울을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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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송탄버스정류장에서 정영일 할아버지가 인천 공항행 버스에 오르고 있다. 오종민기자

 

과거에는 자택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송탄터미널을 이용하며 보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지역 이동을 할 수 있었지만 경영난에 허덕이던 송탄터미널이 폐업 수순을 밟자 간이로 설치된 정류장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류장을 오기까지의 과정도 버겨웠다. 도로변에 덩그러니 생긴 탓에 주차 공간도 없어 주차 자리를 찾기 위해 한참을 돌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 할아버지는 “본래 송탄터미널이 운영됐을 때는 집에서 20분 거리이고,주차도 쉽게 할 수 있었다”며 “터미널이 폐업 후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 놓은 정류장 때문에 대중 교통 이용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푸념했다.

 

공항 가는 버스는 1시간가량이 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연신 손 부채질을 하며 기다림과 더위와 싸우던 정 할아버지는 버스가 완전히 멈추자 이미 녹초가 된 고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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