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화면에 ‘감독 차세환, AI 아티스트 차세환, 생성형 AI 챗지피티·미드저니…(생략)’라는 글씨가 올라간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제28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BIFAN 2024)에서 ‘부천 초이스: AI 영화’ 본선 진출작 중 하나인 영화 ‘파이널 씬’의 엔딩 크레딧 장면이다. 보통의 엔딩 크레딧에 감독, 각본, 출연자 및 스태프의 이름이 오르는 것과 사뭇 다르다.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 영화·영상 산업에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열린 BIFAN은 그 지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생성형 AI로 제작된 영화작품을 다룬 ‘부천 초이스: AI 영화’ 부문 시상식에선 레오 캐논 감독(프랑스)의 ‘할머니들은 어디로 떠난걸까(Where Do Grandmas Go When They Get Lost?)’가 작품상을 수상했다. AI의 창의적 활용과 시각적-청각적 예술성, 독창성을 기준으로 수상작이 선정됐다.
기술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국내 영화 ‘폭설’은 각본을 제외한 분야에서 AI 기술을 다방면으로 활용해 제작했다.
AI 기술이 가진 강력한 장점은 소규모 자본으로 할 수 없던 다양한 제약에서 벗어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창작자는 보다 자유롭게 역량을 펼칠 수 있다. 현재 AI 기술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며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프리비즈(Pre-Visualization·사전시각화)’ 시장이다.
이는 드라마나 영화 등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에서 투자자 등에 컨셉을 미리 제시해 사전 검증하는 과정이다. 영화의 규모가 커질수록 투자의 리스크(위험부담)도 클 수밖에 없고, 의사결정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때 구체적인 시각 이미지가 있으면 보다 명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AI는 시각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강점을 갖는다.
예를 들어 미래의 28세기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에 공룡과 외계인이 등장하고 그 안에서 인간이 전투복을 입고 전쟁을 한다는 시나리오가 있다. 이를 말로써 전달하면 상상력을 동원하며 이미지를 그려내기 쉽지 않지만, AI 기술로 만들어낸다면 실사 테스트의 데모촬영보다 기간 및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현재의 기술력은 광고영상이나 티저, 10분 내외의 짧은 분량의 영상을 만드는 데 활용되지만,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 1시간, 2시간짜리 영상을 만드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특히 AI기술 응용은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는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과 비견해 중소자본의 국내 영화업계 활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예술 분야에선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 대상 수상 및 국내 유일의 AI영상 전문제작 업체 (주)스튜디오프리윌루전 공동 창업자인 구도형 부대표는 “영화시장에 이제 막 진입하는 신인 감독 등은 예산 등 현실적인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며 “AI는 거부한다고 해도 필수적으로 도래할 미래이기 때문에 재빨리 기술을 받아들이고, 여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사회적, 제도적으로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아트앤테크놀로지(A&T)랩의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승무 영상원 교수는 “예술이 어떠한 도구(기술)와 함께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인간의 고유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창의성’이라는 부분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콘텐츠와 창작, 예술을 위해 기술이 활용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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