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폐축사 뒤섞인… 위기의 한센인 마을 [한센인에게 낙원은 없다]

1960년대 정부 강제 이주정책으로 형성...양주 천성·양평 상록마을 ‘고통의 나날’
차별·무관심 속 방치… 생활생태계 파괴, 그린벨트 묶여 시설 개·보수도 어려워
정부 지원금 月 19만원뿐… 관심 절실

한센인 정착마을 중 하나인 양주시 천성마을에 있는 폐축사 여러 동이 수십년째 방치돼 있다. 오민주기자
한센인 정착마을 중 하나인 양주시 천성마을에 있는 폐축사 여러 동이 수십년째 방치돼 있다. 오민주기자

 

한센인. 이따금 언론에 등장했지만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진 지 오래된 존재. 평생을 사회적인 편견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이 더해지면서 방치의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워졌다. 공장이나 축사로 사용되거나 오래전 지어진 건물들은 개보수조차 어려워 한센인들의 생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나, 지자체의 관심은 이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경기일보는 차별과 방치 속에 고통받는 한센인들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 주

 

“평생 격리돼 살아왔는데, 방치된 폐건물이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24일 오전 10시께 찾은 양주시 천성마을. 이곳은 1960년대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형성된 한센인 정착마을 중 하나다. 갈 곳이 없는 한센인들이 땅을 일구며 마을을 만들었다. 현재 마을에 남아 있는 한센인은 모두 36명, 평균연령은 81세다. 대부분 소규모 가축사육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으나 고령화와 축산업 불황 등으로 인해 하나둘 폐업하면서 폐축사가 늘어났다.

 

마을의 입구를 따라 굽이굽이 언덕길을 오르는 길에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허름한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거동이 불편해진 한센인들에겐 지팡이에 의지해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도 하세월이다.

 

떠나간 사람들로 마을 곳곳에 생긴 빈집들은 외벽이 갈라지고 철근이 드러난 채로 위태롭게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천성마을은 그린벨트 규제에 묶여 있어 당장 시설 개보수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김매수 천성마을 대표(80)는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포함된 슬레이트가 포함된 건물들이 곳곳에 있지만, 나이 들고 병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그린벨트 규제에 막혀 마을이 점점 폐허가 돼 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양평군 상록마을 주민들의 집 주변을 석면 슬레이트 지붕과 벽면이 내려앉은 폐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오민주기자
양평군 상록마을 주민들의 집 주변을 석면 슬레이트 지붕과 벽면이 내려앉은 폐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오민주기자

 

같은 날 양평군에 있는 상록마을도 마찬가지. 상록마을의 경우 경기도가 지난 2013년 마을 안에 주택 15세대를 지어줬지만, 정부의 관심이 끊긴 지 오래인 듯 마을 곳곳에서 무너져가는 폐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상봉씨(71·여)의 집 주변에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들어진 폐축사 2동이 벽면이 내려앉은 채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철거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상태다. 위로지원금 명목으로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은 월 19만원이 전부. 더욱이 토지 소유권도 없고 건물은 무허가이기 때문에 철거를 할 수도, 복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한센인 정착마을 주민들은 이곳에서 남은 삶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생을 사회로부터 차별받으며 움츠러든 채 살아왔다”며 “하나씩 손으로 일궈가며 평생을 살아온 이곳에서 하루라도 인간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울먹였다.

 

●관련기사 : 편견에 내쫓긴 한센인… 악취·발암물질에 갇혀 산다 [한센인에게 낙원은 없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92458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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