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약육강식의 처절한 전쟁. 식물의 세계에도 적용된다. 억새와 환삼덩굴이 그렇다. 으름장을 놓는 차원을 넘어 틈만 나면 상대의 영역을 무단 침범한다. 가해 측은 환삼덩굴이다.
억새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키 1~2m에 줄기는 원기둥 모양이다. 수세적이고 수동적이다. 잎은 길이 40~70㎝에 너비는 1~2㎝다. 잎 가운데 굵고 흰색 맥이 있다. 꽃은 줄기 끝에서 작은 이삭이 빽빽이 달린다. 가을에 무리를 지어 피는 꽃이 근사하다.
환삼덩굴의 잎은 손바닥 모양이다. 줄기는 억센 털이 촘촘하게 돋아 있다. 외형부터 공격적이고 호전적이다. 길가에서 잡초들과 자란다. 억센 줄기도 눈길을 끈다. 다른 식물을 휘감아 말라죽게 하면서 서식지를 넓혀서다. 제거하지 않으면 기존 고유 식물들의 터전이 좁아진다.
환삼덩굴이 억새 군락지를 점령(경기일보 10월24일자 7면)했다. 그것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특례시 팔달구 장안동 수원화성 화서문에서다. 억새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 있던 억새밭 일대가 군데군데 파여 있고 훼손됐다. 환삼덩굴의 확산으로 억새들이 잠식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근에 있는 둘레길을 따라 언덕길을 올라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길 주변에 펼쳐져 있는 억새들이 윗부분에만 간신히 남아 있어 억새 군락지라고 보기에도 무색할 정도다.
이 현장은 2~3년 전부터 그랬다. 그때부터 억새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화서문 일원 억새들이 외래종 확산으로 위협받고 있다. 억새들은 2004년 서문 아파트를 철거하며 진행된 화서공원 복원공사를 통해 심어졌다. 하지만 20년 만에 파괴되고 있다. 시의 무관심 탓이다.
전문가들은 일정한 시기에 두세 번 나눠 방제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자연의 복원력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외래종 확산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생태계도 후손들로부터 빌린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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