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샘어린이도서관 트윈웨이브서 12~16세 학생들, 자신만의 세계관 구축 게임요소·이야기 놀이 콘텐츠 도입해... 콘텐츠 홍수 속 공동체 정신·상상력 길러
“도시와 바다가 전쟁을 치러 세상은 황폐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 ‘서리몰이꾼’이 올 걸 대비해 지하 벙커에 대피소를 만들어 대비했습니다. 적이 몰려오면 싸울 로봇을 만들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3분의 1만이 살아남았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 같기도, 판타지 소설의 도입부 같기도 한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다솔초 5학년 김장호 학생을 포함한 학생 세 명이 만들어낸 세계관의 줄거리다. 자신들이 구축한 마을의 지도 곳곳을 설명하는 김 군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김군은 “내 차례가 되면 내 마음대로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어 너무 재밌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SNS와 모바일·PC 게임을 통한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 디지털 매체와 미디어로 인해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힘을 기를 기회는 부족하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책’을 가까이 두고 ‘독서’ 문화를 전하고 싶지만,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도서관에서 TRPG(Table-talk Role Playing Game)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4일 오후 수원 장안구 슬기샘어린이도서관 3층 트윈웨이브 다목적실에는 4개의 원형 탁자에 나뉘어 앉은 12명의 학생들이 열띤 모습으로 자신들만의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슬기샘어린이도서관의 TRPG 프로그램 ‘평온한 한 해’에 참여한 참가자들이다.
‘트윈웨이브’는 슬기샘어린이도서관에서 ‘10대(Teenager)’와 사이(between)’를 결합한 12~16세의 ‘트윈 세대’만을 위해 구축한 전용공간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 어린이라 하기에는 꽤나 ‘철’이 들고, 청소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이자 독립적으로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전환기에 주목했다.
■ “참여자 스스로 배우이자, 관객이자, 각본가 돼”
TRPG는 이미 해외에서는 어린이 문화프로그램으로 학교 등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TRPG는 유년 시절 모두가 한 번쯤 해본 일종의 ‘역할놀이’다. 참여자들은 책상에 둘러앉아 대화하며 진행되는 놀이로서, 기본적인 상황과 이야기를 연계해 나갈 수 있는 설정이 담겨있는 얇은 ‘룰(규칙)북’이 되는 책을 기반으로 세계관을 구축해 나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의 요소를 도입한 TRPG, 쉽게 말해 ‘이야기 놀이’ 콘텐츠를 도입해 참여자들이 직접 배우이자 관객이자 각본가가 돼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협동심과 공동체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의도했다.
“숫자 6 카드를 골랐으면 이방인이 마을에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은 어디에서 등장할까요”, “아파트요!”, “이방인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얼굴이 두 개일 것 같아요!”
이날 도서관 문화프로그램팀 ‘도토리둥지’의 지도하에 진행된 ‘평온한 한 해’는 지도를 그리면서 진행하는 TRPG 게임으로 트럼프 카드와 주사위를 사용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모종의 이유로 위기에 처한 세상 속, 일부 인류가 공동체를 만들어 세상을 구하는 내용으로 참가자들은 공동체가 한 해 동안 다양한 사건을 겪는 과정을 직접 만들게 되는데 참가자들은 다양한 캐릭터를 구축해 공동체를 현명한 길 혹은 어리석은 길로도 이끌어갈 수 있다.
각 조에 자리한 학생들은 카드를 뽑고 주사위를 굴리며 이야기를 진행해 갔다. 기본적인 상황 설정을 기반으로 학생들은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취했다.
송덕중 1학년 현유민양의 조는 힘 센 근육 집단, 오리 군단, 좀비 등 여러 부족이 등장하는 마을을 만들어냈다. 현양은 “여러 부족 간 싸움이 일어났고 마을 청년 잭슨이 핵폭탄을 누르며 결국 적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죽었지만 오리 부족만이 살아남았다”며 “이 마을에는 사실 오리만의 세상이 온다는 예언이 있었는데, 그 예언이 들어맞는 이야기가 완성됐고 그 예언은 내가 만들었던 것”이라며 즐거움을 감추지 않았다.
슬기샘어린이도서관의 위탁운영을 맡고 있는 수원문화재단의 유정호 수원문화재단 책문화부 대리는 “책에 대한 관심, 스스로 무언가를 상상해 내는 힘, 다른 사람과의 합의 등을 고루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 도서관이 트윈세대 이용자들에게 TRPG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시방과 코인 노래방, 유튜브 등 12~16세의 나이대 친구들은 놀 공간도 즐길 만한 거리도 많지 않다”며 “이 시기에는 도서관과도 친숙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단순한 도서관이 아닌 휴식을 취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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