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셰르파 vs AI안전연구소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안학과 교수·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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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파(Sherpa)’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히말라야산맥, 특히 네팔 북동부와 에베레스트산 남쪽 솔루쿰부 지역에 거주하는 티베트 계열의 부족을 가리킨다. 셰르파는 고산지역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산맥에 널려 있는 숱한 위험과 장애물에 친숙하며 등산 실력 역시 출중하다. 그래서 에베레스트산을 비롯한 히말라야산맥을 오르려는 등정대에 셰르파는 매우 중요한 가이드다.

 

셰르파는 언뜻 ‘짐꾼’처럼 보인다. 맞는 말이다. 셰르파는 등정대의 무거운 짐을 지어 나르는 짐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험한 등정 과정에서 앞에 어떤 장애물이 놓여 있고 장차 어떤 위험이 닥칠지 셰르파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기에 셰르파는 등정대의 ‘길잡이’ 역할도 한다. 그래서 셰르파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의 구체적인 안내 없이는 그 어느 등정대도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이르기 힘들다.

 

등정대가 드디어 산 꼭대기에 이르러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만끽하며 찍은 기념사진 속에서 동행한 셰르파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셰르파는 등정대의 짐꾼이자 길잡이이지만 등정대의 주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셰르파는 다양하고 많은 등정대를 꾸준히 돕는다. 50세의 셰르파 카미 리타는 부친의 뒤를 따라 셰르파의 길로 나선 1994년 이래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다양한 등정대를 안내해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29번이나 올려 놓았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정복한 성공 이야기 가운데 셰르파의 이름과 얼굴은 언제나 중요 관심 대상이 아니다.

 

지난달 27일 우리나라 최초로 ‘AI안전연구소(AI Safety Institute·AISI)’가 판교 글로벌 R&D센터에 문을 열었다. 현재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며 입법 과정을 밟고 있는 ‘AI기본법’에도 명시된 조직이다 보니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기대와 우려가 겹친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업의 입장에서 ‘안전’이라는 단어는 ‘규제’라는 단어와 동일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AI안전연구소가 앞으로 AI 기업에 대해 일종의 규제 기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법하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내세운 표현이 바로 ‘셰르파’다.

 

AI안전연구소를 뜻하는 AISI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공통 명칭이다. 다들 ‘에이시’라고 읽는다. AISI에서 알파벳 ‘S’는 안전(Safety)에 해당하지만 이는 셰르파로 대체될 수 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정대인 우리나라 AI 기업에 AI안전연구소가 셰르파와 같은 존재로 다가가는 것은 연구소가 제시한 비전이다.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만나게 되는 다양한 위험과 장애물을 예측하고 발견해 제거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안전한 등정길을 만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AI안전연구소의 역할이다.

 

이날 개소식에서는 우리나라 AI 기업, 대학, 연구소 등 25개 조직과 단체가 앞으로 AI 안전에 관해 원팀(One Team)이 되고자 ‘AI 안전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식도 함께 진행했다. 향후 AI 안전 컨소시엄을 통해 AI 안전을 함께 도모할 조직과 단체를 추가로 더 모은 후 컨소시엄 발족식 및 활동도 진행할 계획이다.

 

선진국마다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라보며 나름대로 국가 전략을 세우고 AI 산업 발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다만 AI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우려를 국가 단위로 불식하기 위해 작년 11월 영국이 AI안전연구소를 최초로 세운 이래 미국,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에 이어 우리나라도 이번에 여섯 번째로 설립했다. 우리나라 AI 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도록 AI안전연구소가 국제 협력 활동은 물론이고 ‘셰르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경우 AI 국가경쟁력 3위(G3)라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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