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율곡 종손 2대에 걸쳐 독립운동하다 옥고 등 고초 비화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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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이 선생의 제12대 이종문 종손과 그의 동생 검거 기사 . 제15대 이천용 종손 제공

 

파주시가 율곡 이이 선생 학문연구소인 화석정 복원 등 율곡이이 찾기(본보 11월26일자 10면)에 나선 가운데 후손들이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율곡 이이 제15대 이천용 종손(82)은 13일 본보와 만나 12~13대 종손이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 및 옥고를 치르고 사후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등을 받은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이 종손은 “제12대 이종문 종손(1868~1945)은 지난 1990년 12월 건국훈장 애족장, 그의 동생 종성은 2013년 8월 건국훈장 애족장, 13대 이학희 종손(1890~1918)은 2020년 8월 대통령표창을 사후에 받았다”고 설명했다.

 

2대에 걸친 율곡 종손·형제의 독립운동사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가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이 처음으로 발굴해 정부에 독립운동 포상신청서를 제출, 인정받게 됐다고 이 종손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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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이 선생 제13대 이학희 종손 체포 기록(왼쪽) 제15대 이천용 종손 등 제공

 

당시 조 소장의 독립운동 포상신청서에 따르면 이종문·학희 부자는 소현서원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당시 의병장이었던 의암 유인석을 율곡 선생 종가였던 황해도 해주 석담에서 만나 의병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그러다 1914년 광복회 황해도 지부가 설립되자 적극 가담해 독립운동을 하다 이학희 종손은 1918년 6월 두번째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가 같은해 10월15일 순국했다.

 

제12대 이종문 종손은 아들 이학희가 순국하자 동생 이종성(1871~1925)과 함께 대한독립단 해주지단고문 및 지의장을 맡아 계속 투쟁에 나섰다.

 

이후 친일파 은율군수 암살사건 등에 연루된 해주지단 가담 혐의로 이 종손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동생 이종성은 단원들에 대한 숙식제공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뒤 출소했다 1925년 11월19일에 서거했다.

 

아들에 이어 동생까지 잃은 이 종손은 율곡선생 유적보존회 이사로서 소현서원을 지키고 창씨개명을 거부한 채 지내다 광복 후 2개월 뒤 별세했다.

 

조 소장은 독립운동 포상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하면서 “국민들이 5천원권에 인쇄된 율곡 초상화를 보면서 그의 후손들이 앞장서서 나라를 지켰던 사실도 반드시 기억했으면 한다”고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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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이 선생이 설립한 은병정사를 모태로 설립된 소현서원. 제5대 이천용 종손 제공

 

제15대 이천용 종손은 “할아버지들의 처절한 독립운동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조 소장의 발굴에 세상에 알려 지게 됐다”며 “조선중기 대유학자며 경세가였던 율곡 선생의 높은 경륜 외에 후손들이 일제에 저항한 사실들을 율곡이이 찾기에 반드시 기념 및 기록되길 기대한다. 관련 자료를 기증할 의사도 있다”고 말했다.

 

파주시 관계자는 “(율곡선생 후손들의 독립운동은) 놀라운 일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실천한 사실을 널리 알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율곡 선생은 1576년 황해도 해주에 머물면서 격몽요결 편찬 및 은병정사 설립(1578) 등으로 후학을 양성했다. 1610년 김장생 등 제자들이 은병정사를 모태로 소현서원을 설립했다. 파주 율곡리는 율곡선생 본향으로 종가 및 국가사적 525호 자운서원(법원읍)이 있어 심사임당 등 가족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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