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서 정숙자, 최재례씨 그림 50점 모아 전시 세월과 추억, 감정이 녹아든 수묵화 같은 그림들…감동
얼어붙은 눈이 골목골목 채 녹지 않은 지난 2일 오후 2시. 수원특례시 세류동 소재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에 정숙자(83), 최재례(77)씨가 어김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털목도리와 장갑, 모자로 무장을 한 채 들어선 이들은 익숙한 듯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 놓여있는 달력을 보기도 하고, 신문을 들추기도 하며 오늘 그릴 그림을 골랐다.
신현옥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장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같이 찾아 오신다”고 소개한 이들은 협회의 공식 ‘우수 개근생’이다.
전날 그린 그림에 명암을 주며 색칠을 이어가던 최재례씨는 “협회에 올 때 집에서 나설 때부터 웃고 나온다. 지난 추억,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그리는데 재미가 나서 웃음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말을 아끼던 정숙자씨는 스케치할 대상을 한참 이리저리 살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생전 그림을 그리지 않았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 내가 이런 거 그릴 줄 알았나. 내 맘대로 안 돼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그림 그리는 게 참 좋아.”
초가집과 나뭇가지에 앉은 새, 강렬한 색을 머금은 꽃, 몽환적인 파란 눈을 가진 여인, 달마쥐와 벌, 나비가 꽃에 어우러진 봄의 풍경,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한 부엉이, 서당의 풍경이 담긴 그림….
정숙자, 최재례씨가 그린 작품 50여점이 협회의 야외 전시장에 내걸렸다.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는 지난 9일 ‘알콩달콩 정숙자·최재례 展’을 개막하고 이달 31일까지 전시한다.
이들의 그림엔 비싼 재료도, 화려한 풍경도 없지만 따뜻하고 포근함이 느껴진다. 연필, 색연필, 크레파스, 유화 등 다양한 평범한 재료 속에서도 수묵화의 감성이 느껴지는 것은 두 사람이 오랜 세월 응축해 온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서일테다.
무언가를 보고 그린 그림이지만 그림은 모두 두 사람의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스케치할 대상들은 이들의 어린 시절을, 추억을 떠올리게 해 가슴 깊은 곳에 꽁꽁 묻어놨던 추억과 꿈들이 도화지로 하나씩 옮겨졌다.
신현옥 한국치매미술협회장은 “어르신들의 그림에는 젊은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정서와 역사가 담겨있는데 그분들의 추억을 아카이빙하고 싶어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며 “효원의 도시에서 효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어르신들에게는 행복과 추억을, 젊은세대는 부모세대를 다시 한 번 공경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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