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물건에만 있는 게 명품은 아니다. 가문에도 있다. 이런 집안을 명가라고 부른다. 명품이 유지되려면 소비자들로부터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 명가도 나라와 사회의 신뢰가 계속돼야 한다.
명가를 들먹인 연유는 율곡 선생 가문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종손들이 일제강점기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펼치다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른 사실이 뒤늦게 확인(본보 16일자 10면)됐다.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이 이 같은 사실을 처음 발굴해 알렸다. 그가 정부에 제출한 독립운동 포상신청서를 살펴보자.
율곡 선생의 제12대 이종문 종손(1868~1945)은 1990년 12월 건국훈장 애족장, 그의 동생 종성은 2013년 8월 건국훈장 애족장, 제13대 이학희 종손(1890~1918)은 2020년 8월 대통령 표창을 사후에 받았다.
이종문·학희 부자는 소현서원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당시 의병장인 의암 유인석 선생을 율곡 선생의 종가가 있는 황해도 해주 석담에서 만나 의병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그러다 1914년 광복회 황해도지부가 설립되자 가담해 독립운동에 전념하다 이학희 종손은 1918년 6월 두 번째로 체포돼 옥고를 치르고 같은 해 10월15일 순국했다.
이종문 종손은 아들 학희가 순국하자 동생 이종성(1871~1925)과 대한독립단 해주지단고문 및 지의장을 맡아 투쟁했다.
이후 친일파 은율군수 암살사건 등에 연루된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동생 이종성은 단원들에 대한 숙식 제공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뒤 1925년 11월19일 서거했다.
아들에 이어 동생까지 잃은 이 종손은 율곡 유적보존회 이사로 소현서원을 지키고 창씨개명을 거부한 채 지내다 광복 후 2개월 뒤 별세했다.
율곡 선생의 종손 이외에도 대한민국 많은 명가들의 독립운동이 재조명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늠름하고 올곧은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