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세계평화 외친 한국인들

최현호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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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선 시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의 도청사나 시청사를 떠올려 보면 생경한 모습이다. 그 의문은 금세 풀렸다. 시청사 앞 광장과 부두의 평화로운 풍경만큼이나 사진에 담고 싶은, 바로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였던 거다.

 

지난 10일(현지 시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설레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년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 한강 작가가 수상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건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검은색 드레스를 차려 입은 한 작가는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증서와 메달을 받아 들었다. 이후 블루홀로 자리를 옮겨 열린 연회에서 한 작가는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같은 날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에서는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그곳에도 한국인이 있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단체는 일본의 원자폭탄 생존자 단체인 ‘니혼히단쿄’(일본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였다. 원폭 피해를 증언해 핵무기가 사용돼선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 노벨위원회의 선정 이유다.

 

니혼히단쿄는 한국인 피폭자들과 해외로 이주한 피폭자들이 겪은 고통, 이들과 연대해 일본 정부에 지원을 요구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상식 대표단에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과 원폭 피해 2세인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회장이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다.

 

다나카 데루미 대표위원은 물론이고 한국의 피폭자와 후손은 오슬로에서 ‘비핵’과 ‘평화’를 외쳤다. 원폭으로 인한 피해와 공포를 고스란히 가슴에 품은 이들의 말은 결국 한 작가가 말했던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과 일맥상통한다. 내년이면 원폭 피해 80주년이다. 2025년까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12월은 잔인한 달’이다. 계엄과 탄핵이 휩쓸어 버린 혼란과 공포의 순간을 딛고 80년 피폭의 역사를 뒤로하며 평화의 날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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