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200년 전 어떤 역제안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이건 가상 상황이다. 한국이 신의주항과 압록강 자유이용권을 요구했다. 그러자 중국이 아예 만주 전체를 사가라고 제안했다.

 

현실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에서다. 주체는 프랑스였다. 뉴올리언스항과 미시시피강 항행권을 보장받으려는 미국에 루이지애나 전체를 사가라고 역제안했다. 1803년 12월20일이었다.

 

당시로 돌아가 보자. 루이지애나는 프랑스군의 철수로 미국 영토로 들어왔다. 한반도 면적의 10배에 해당하는 광활한 땅이었다. 나폴레옹은 당초 미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꿈을 꿨다. 매각은 안중에도 없던 그를 코너로 몰고 간 건 1801년 프랑스 생도밍고(현 아이티)에서 발생한 흑인 노예들의 반란이었다. 정예 병력 2만여명을 파견했지만 끈질긴 저항에 봉착할 즈음 루이지애나를 위임 통치하던 스페인 총독이 미국 선박의 운항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당시 물동량의 이동 경로 40%를 미시시피강에 의존하던 미국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항구 기착권만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이 준비한 돈은 2만달러. 프랑스의 역제안 금액은 2천250만달러였다. 최종 가격은 1천500만달러. 에이커당 3센트에 불과한 헐값이었지만 미국 조야는 들끓었다. 일부 주는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의회의 비준도 없이 승인 도장을 찍었다. 이 거래 이후 두 나라의 행보는 극과 극이었다. 골치 아픈 식민지를 팔아넘겨 영국과 완충지대를 형성하겠다던 프랑스는 쇠락의 길을, 미국은 서부 대개척이라는 가도를 달리게 됐다.

 

협상 주역들의 여적도 흥미롭다. 미국 측 전권대사였던 제임스 먼로는 5대 대통령에 취임해 ‘먼로 독트린’을 남겼다. 프랑스 공사였던 리빙스턴은 증기선의 아버지인 로버트 풀턴을 후원했다. 미국의 비공식 대사로 활약한 듀폰의 아들은 세계적인 화학그룹 듀폰을 설립했다.

 

역사는 당시의 잣대로는 가늠할 수 없다. 계속 돌고 돌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역제안이 시사하는 의미가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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