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식물과 동물은 처음부터 현재의 형태로 만들어졌을까. 창조론의 얼개다. 종교의 영역이다. 반론도 있다.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해 간다는 이론이다. 진화론이다. 과학의 영역이다.
진화론이 본격화된 시점은 19세기 중반이었다. 그 당시를 소환해 보자.
범선 한 척이 닻을 올렸다. 남미와 태평양이 목적지였다. 지질 조사와 해역 탐사 등을 위해서였다. 영국의 플리머스 항구에서 출항했다. 배의 이름은 비글호였다. 사냥개에서 유래됐다. 길이 27.5m에 무게는 242t이다. 5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이 범선의 이름이 길이 남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타고 있어서였다.
승선 당시 다윈의 나이는 22세였다. 의학에 싫증을 느껴 박물학과 지질학,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4년10개월을 남미와 태평양, 호주의 거친 바다와 섬들을 오가며 지질학과 생물학에 푹 빠졌다. 다윈은 귀국 후 3년이 지나자 창조론에 도전하는 저술을 내놨다. 진화론의 본격 출범이었다.
물론 출간과 동시에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나이 50세에 발표된 ‘종의 기원’은 다윈을 뉴턴과 코페르니쿠스에 버금가는 학자 반열에 올려 놓았다.
비글호도 눈길을 끌었다. 진수된 해는 1820년. 영국은 비글호와 동일한 제원인 ‘체로키급’ 범선을 117척이나 건조했다. 척당 건조비로 7천800파운드가 들어간 체로키급은 지구촌 해양을 누비며 조사하고 다녔다. 대영제국의 척후병이었다.
제국의 확장을 목적으로 건조돼 자연과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다 1870년 고물상에게 불하돼 해체됐다. 하지만 배의 이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비글이란 이름의 영국 해군 함정만 8척이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우주 개발에 맞서 유럽연합이 지난 6월 쏘아 올린 화성 탐사선 이름도 비글호다.
1831년 12월27일 출범한 범선 한 척이 진화론을 대세 이론으로 만들어 냈다. 역사의 엄중한 무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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