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경기일보는 지난 2021년부터 연속 보도를 통해 도내 원폭 피해자와 후손들의 어려운 현실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 결과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로 원폭 피해자 3세대까지 지원책이 마련됐고, 이에 더해 최근 일본 원폭피해자단체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평화와 비핵화의 중요성을 알렸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고 있다. 이에 경기일보는 원폭 피해 80주년을 맞아 피폭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조명하며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경기도, 원폭 피해자 지원 확대에도 여전히 남은 과제들
경기일보는 지난 2021년부터 원폭 피해자와 후손들의 현실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평택의 낡은 건물에 자리 잡은 원폭피해자협회와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2·3세대의 이야기는 피해자들의 어려운 삶을 조명하며 경기도 정책 변화의 계기가 됐다.
경기일보 보도 이후 도는 원폭 피해자 지원 대상을 전국 최초로 3세대까지 확대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피해자 1세대에게는 매월 5만원의 생활지원수당이 신설됐고, 도내 의료원에서는 진료비와 종합검진비의 50%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또 원폭 후유증과 심리적 고통을 겪는 피해자와 후손들을 위해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도입됐으며, 문화·휴양시설 이용료 면제 혜택도 제공되고 있다.
특히 원폭피해자지원위원회가 지난해 경기일보의 보도 이후 다시 열리기 시작하며 피해자들이 오랜 세월 외면받았던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내 일부 피해자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제공된 지원 정책의 실질적인 이용률도 낮은 상황이다. 따라서 피해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한국의 지원 수준은 일본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은 원폭 피해자들에게 건강수첩을 교부하고 전문 병원을 설립해 의료 지원을 강화하며, 피해자들에게 정기적인 수당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지원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피해자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추가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도는 지원을 확대하며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정책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피해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경기도가 원폭 피해자 지원의 모범적 사례로 자리 잡고, 전국적인 지원 체계 확립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상복 경기도원폭피해자협회장은 “금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과 경기도가 원폭 피해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원폭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오며 경기도에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정경자 경기도의원(국민의힘·비례) 역시 2025년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나가겠다는 각오다.
정 의원은 “원폭피해자지원위원회에서 피해자분들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대해 목소리를 내줬다”며 “도가 피해자 지원에서 선도적인 사례가 돼 전국, 전 세계의 평화에 앞장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일본 원폭피해자 단체 노벨상 수상에도 전 세계 비핵화와 평화에 갈 길 멀어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니혼히단쿄)가 지난해 12월10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비핵화와 평화 운동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원폭 피해자들의 오랜 호소는 핵무기의 참혹함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니혼히단쿄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의 증언과 운동을 통해 핵무기 폐기를 주장해 온 단체다. 노벨위원회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증언의 힘”을 수상 이유로 밝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핵 억지력’을 이유로 비핵화 조약 가입을 거부하며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나카 데루미 대표위원은 수상 연설에서 “핵무기는 단 한 발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핵우산 정책을 고수하며 피폭자 보상에 소극적이다.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은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에게도 큰 의미를 갖는다. 강제동원 피해를 겪은 한국의 원폭 생존자들은 일본의 역사적 책임과 함께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연대를 강조해 왔다.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의 피해자들은 일제 강점과 원폭 피해라는 이중 고통을 겪었다”며 “핵 없는 세상을 위해 한국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과 핵무기가 남긴 고통을 더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제사회가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특히 한국은 비핵화를 향한 국제적 목소리를 모으는 중심에 설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일본과 달리 비핵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온 한국은 원폭 피해를 포함한 전쟁 피해의 역사적 교훈을 기반으로 평화를 향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의 평화 체제 구축을 통해 글로벌 비핵화 운동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수상은 단순히 일본의 원폭 피해를 알리는 것을 넘어,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국제적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나카 대표는 “핵 억지론이 아니라 인류가 핵무기 없는 세상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신념이 각국 정책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메시지는 한국과 국제사회가 핵 없는 세상을 향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답해야 할 무거운 과제를 남긴다.
비핵화는 특정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 전 세계의 공동 과제다. 한국이 중심이 돼 평화 외교를 강화하고 국제적 연대를 확대할 때, 비핵화와 평화의 길은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전문가 제언 “한국, 피폭국으로서 비핵화에 적극 나서야”
전문가들은 한국이 강제 징용의 비극 속에서 원폭 피해를 겪은 피폭국이라는 사실을 정부와 지자체가 알리는 데 노력하고, 전 세계 비핵화와 평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은 “핵 없는 세상을 향한 비전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며 “한국은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국제적 연대의 중심에 서야 하며, 이를 위해 적극적인 정책과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 소장은 원폭 피해자들의 지원은 단순한 금전적 보상을 넘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포괄적인 대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처럼 체계적인 의료 지원과 복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동일한 수준의 지원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핵무기 금지 조약에 우리나라가 옵저버의 역할이라도 참여해 국제사회의 비핵화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며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국이 중심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피력했다.
이대수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대표도 비핵화를 위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평화는 핵무기가 없는 세상을 통해 평화의 길에 닿을 수 있다”며 “그러나 핵확산금지조약 주도국은 핵카르텔에 머물러 있으며 한국과 일본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인 10명 중 9명이 한국에 원폭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 의식과 사회적 관심이 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우리는 ‘핵맹사태’에 빠져있는 중인데 피폭당사자와 지원단체가 평화를 위한 공동노력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고 촉구하고 작업을 해야 한다”며 “이 문제에 대해 정부와 의회가 우선적으로 관심 가져야 하며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도 관심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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