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윤 대통령‚ 모든 권력이 그를 떠나고 있다

부총리 헌재 심리 길 열고
수사·법원, 체포영장 발부
이렇게 빨리 권력 떠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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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7년 설립됐고 1988년 문을 열었다. 제헌국회 이후 등장까지 40년 세월 걸렸다. 그 출발의 결정적 동기는 6·29 민주화다. 그런 만큼 헌재의 정신은 권력의 견제와 부패에 있다. 그 정신이 잘 드러난 게 재판관 추천 분배다. 입법, 사법, 행정에 고르게 몫을 정해줬다. 국회, 대법원장, 대통령에 각각 3명씩이다. 서로 침범해선 안 되는 영역이다. 이 간단한 원칙에 대통령 권한대행 둘이 갈라졌다.

 

와 있는 건 국회 몫 재판관 3명이다.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임명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이 정리된 게 지난달 26일 담화다. 결국 마지막이 된 담화에서 그는 여야 합의를 강조했다.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은 없었다고 했다. 사실 이 논리가 향하는 곳은 대행의 역할이다. 헌법 기관 인사는 대행의 권한 밖이라는 주장이다. 담화 어디에도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갈 길 바쁜 야당의 분노를 사 결국 탄핵 당했다.

 

최상목 ‘대행의 대행’은 3명 가운데 2명을 임명했다. 말로는 한 전 대행의 원칙을 존중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옳고 그름은 따질 필요는 없다. 그건 곧 지금의 여론이다. 다만 ‘마은혁 후보자 제외’는 비논리다. ‘3명 후보자’는 전부 국회 몫이다. 대통령(또는 권한대행)이 후보자 적격성을 다시 판단하면 안 된다. 절묘한 선택이라는 얘기도 있긴 하던데. 내 눈에 기괴한 선택이다. 결국 가까운 시일 내에 다 임명하지 않겠나.

 

바로 그날, 최 대행이 재판관을 임명할 때 서울서부지법은 윤석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공수처가 적시한 혐의는 ‘내란 우두머리(수괴)와 직권 남용 권리행사 방해’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였다. 한남동 공관에서 경호요원들과의 대치가 예상됐다. 그런데 법원은 윤 대통령의 이 기회까지 차단했다. ‘해당 영장은 형소법 110조(군사 비밀), 111조(공무 비밀)의 예외’라고 못 박았다. 경호처도 막으면 불법이라는 경고다.

 

수사기관의 윤 대통령 압박은 오래됐다. 계엄 실패 직후에는 검찰·경찰이 다퉜다. 서로 하겠다며 특수본과 특수단을 만들었다. 공수처까지 뛰어들었다. 세 기관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부르짖었다. 수사 흐름을 서로 선점하려는 여론전도 치열했다. 여기서 ‘대통령 수사’를 말하면 저기서 ‘대통령실 압수수색’이 나왔고, ‘대통령 출국 금지’, ‘대통령 체포영장’으로 이어졌다. 오죽하면 윤 대통령 측에서 ‘수사보다 헌재를 선호한다’고 했을까.

 

윤 대통령 주변에 남은 권력은 없다. ‘내란죄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그런데 수사 기관이 내란죄라고 추궁한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총장, 경찰차장이다. ‘체포영장은 위법’이라고 강변했다. 그런데 법원이 체포하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조희대 법원이다. ‘시간 좀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국무회의에서 재판관을 임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최상목 부총리다. 주변이 모두 그의 적수가 돼 있다. 탄핵보다 훨씬 참담하게 여겨질 현실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의 추억이 있다. 수사지휘권 빼앗기고 홀로 됐다. 구내식당을 오가는 모습만 보였다. 그때 그를 향했던 여론이 있다. 법의 수호자를 지키자는 목소리다. 결국 그는 지위를 찾았고 대통령도 됐다. 5년 지나 또 권한이 정지됐다. 그를 지키는 여론은 여전히 있다. 그를 지키겠다며 공관을 촘촘히 에워쌌다. 공관 안과 공관 밖의 희망은 같을 것이다. 2020년 윤석열 검찰총장의 반전과 같은 2025년 윤석열 대통령의 반전.

 

‘뒤집힐 것이다’, ‘턱 없는 소리다’. 각자의 소망으로 갈리게 될 얘기다. 어차피 정답 없는 미래 일이다. 다만 좌우 없이 궁금해할 의문이 있다. 윤 대통령은 어떻게, 저렇게, 빨리 권력을 잃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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