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외로운 삶에 담배·술 벗 삼아, 후두암 병마 고통… 가족들 보고싶어
병들어버린 남한의 봄 完. “소외된 이방인… 고향 사무치게 그리워”
가족들을 뒤로 하고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으로 왔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게 탈출의 이유였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누나들까지 모두 마음이 쓰였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그를 사람답게 살 게 해줄 줄 알았다.
그런 그는 지금 홀로 후두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다.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없던 18년의 외로운 삶에 담배와 술을 벗 삼았던 게 이유였다. 이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말 한마디 꺼내는 게 어려워진 함경덕씨(55‧가명)가 남겨두고 온 가족들에게 전하는 말을 경기알파팀이 들어봤다.
어머니, 저 경덕입니다.
서른일곱의 나이로 어머니 아버지를 떠났던 저는 이제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은 50대가 됐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살아 계시는지, 누나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제 마음을 전해봅니다.
저는 요즘 문득 문득 함경북도 원성이 생각납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그래도 따뜻했었는데,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겠지만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제가 좀 아픕니다. 후두암이라고 하네요.
치료는 통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제가 일을 쉬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건 사치였습니다.
그곳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면 아프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이런 그리움과 외로움을 겪지 않아도 됐을까요?
대한민국은 사선을 넘어온 저에게 따뜻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원을 거쳐 임대주택을 받고는 제 삶도 달라질 줄 알았지만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서는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냉대와 폭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일했지만,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1년도 안 돼 회사를 뛰쳐나온 뒤 일용직으로 일하면서도 또다시 괴롭힘을 당할까 두려운 마음이 저의 입을 닫게 했습니다. 이른 새벽 집을 나와 인력사무소로, 일터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 저는 오롯이 혼자였습니다.
담배와 술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살기 위해 벗삼던 그것들이 저를 점점 죽음으로 데려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맨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운 외로움이었는데, 이제는 그 외로움을 견딜 날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을 하고 있는 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합니다. 제게 정보를 알려줄 사람도 없습니다.
어머니, 저는 대한민국에서 그저 홀로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이방인일 뿐입니다.
몸이 아픈 건 참겠는데, 마음을 터 놓고 말 한마디 나눠볼 사람이 없다는 건 저를 너무나 힘들게 합니다.
가족들을 등지고 온 게 잘못이었을까요? 그래서 제가 벌을 받게 된 것일까요?
이제 제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길이 가선 안되는 길 인줄 알면서도 제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그저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오늘은 어머니, 아버지, 누나들이 너무나 보고싶습니다. 다시 갈 수 없는 제 고향 원성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홀로 남겨졌다, 도움이 절실했다... 쓸쓸한 죽음만 다가왔다
북한이탈주민의 고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으로 들어온 뒤에는 적응하지 못한 한국에서의 삶으로 홀로 남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이탈주민의 쓸쓸한 삶은 이들의 정신 건강 뿐 아니라 신체 건강까지 망가뜨리면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지난 2020년 8월 평택에서 발견된 50대 남성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이탈주민이던 그는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발견됐다. 8월 한 여름에 홀로 생을 마감했던 그는 부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상태에서 발견됐다.
경기알파팀이 만난 북한이탈주민 지원 단체들은 그가 2018년 말 혼자 한국에 와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외로움 속에서 우울증을 앓았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혼자 마시는 술로 풀었다고 한다. 그렇게 간경화에 걸린 그는 기초생활수급비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홀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 10명 중 3명 이상 혼자사는데…관리 체계 유명무실
북한이탈주민은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에 들어온 뒤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정착 과정에서 받은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홀로 고립되는 상황이다. 특히 도내 북한이탈주민 10명 중 3명 이상이 홀로 지내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들을 사회로 끌어내줄 지원 정책은 유명무실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7일 경기알파팀 취재를 종합하면 도내 북한이탈주민 1만1천428명 중 혼자 사는 북한이탈주민은 34.8%인 3천983명으로 나타났다.
또 통일부가 상시 관리하는 경기도내 위기가구 북한이탈주민은 2천354명이다. 위기가구는 건강보험료, 주택임대료 및 관리비, 통신비 등을 3개월 이상 체납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어려운 이들로 전국 관리대상(7천200명)의 32.6%가 도내에 산다.
그러나 정작 혼자 사는 북한이탈주민 중 위기가구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도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현황만 확인할 뿐 통일부가 하나센터를 통해 하고 있는 위기가구 현황 파악 등은 별도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1인 가구 북한이탈주민의 지원 역시 스스로 하나센터에 찾아간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북한이탈주민이 하나센터를 찾아 어려움을 호소한 경우에만 지원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북한이탈주민의 경제적 어려움만 다룰 뿐 이들의 정신적, 신체적 질환에 대한 위기 관리는 하지 않는다. 도내 한 하나센터 관계자는 “하나센터는 북한이탈주민을 찾아가서 관리를 하는 것보단 어려움이 있는 북한이주민이 하나센터를 찾으면 도움을 주는 형태로 운영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사는 분들이나 위기가구의 현황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주로 홀로 탈북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들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으로 온 북한이탈주민들은 가족과 함께 탈북하지 않은 이상 친인척이 거의 없어 외로움을 가장 큰 문제로 겪고 있을 것”이라며 “외롭기에 사회에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로움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져 질병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혼자 사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이러한 위기에 취약한 만큼 이들이 쓸쓸한 생을 보내지 않도록 적절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유일한 도움 기관 하나센터, 정보 오류에 인력 부족 이중고
북한이탈주민은 각 기초단체가 아닌 통일부 산하의 지역 하나센터에서 관리한다. 그러나 사실상 관리 자체는 불가능한 체계다. 통일부에서 초기 북한이탈주민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다시 하나센터가 받는 방식이라 부정확한 정보가 오는 것은 물론 인력 자체도 부족해 초기 지원을 제외하면 장기적인 관리 체계 자체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는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지원 제도가 대부분 초기에만 집중돼 있다. 입국시 국정원의 신문을 거쳐 탈북 배경을 확인하고 하나원에서 정착 교육을 받은 후 1천만원의 정착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또한 정착기간인 5년 동안은 임대주택도 제공한다.
그러나 국내 정착을 위한 제도는 없다. 이들이 자립해 대한민국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체계가 없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회에서의 부정적 인식이나 차별 경험으로 고립된 이들은 평생 고립된 삶을 사는 형식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5년의 임대주택 생활이 끝난 이후는 더욱 더 관리가 쉽지 않다. 지역별 하나센터가 통일부로부터 받은 북한이탈주민 정보에는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잘못 입력돼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아 생사 확인 조차 쉽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들을 관리하는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도내에는 현재 권역별로 총 6개의 하나센터가 있는데, 경기동부 9명, 경기서부 8명, 경기남부 13명, 경기북부 8명, 경기서북부 10명, 경기중부 8명 등 총 56명의 인력이 근무 중이다. 도내 거주 중인 북한이탈주민이 1만1천428명인 걸 대입하면, 단순 계산 만으로도 하나센터 직원 1명 당 200여명을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나센터는 북한이탈주민별 특성을 파악해 이들에게 적합한 지원을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같은 지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혼자 사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별도의 관리 역시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들이 어떤 상황에서 사회 정착을 포기했는지, 이후 고립돼 있지는 않은지, 사회 단절로 인한 질병은 없는지 등 세분화된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경기지역의 한 하나센터 관계자는 “모든 하나센터의 인력난이 심각하다”며 “5~6명의 직원이 수백명이 넘는 북한이탈주민의 관리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매번 하나센터에서 지원하는 것이 어려워 관련 기관을 소개해주는 방식으로 도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통일부는 위기지표를 보건복지부로부터 연계받아 상시관리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으며, 지자체와 협의해 북한이탈주민 특성과 지역 여건에 따른 정착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남북하나재단과 연결된 독거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선 안부 확인을 하고 있으며 올해는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하나센터의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협의하는 등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제언 북한이탈주민 고독사,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북한이탈주민의 고독사를 막기 위해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 사회가 먼저 가족이 돼주고 북한이탈주민들이 마음을 터 놓을 커뮤니티 등을 활용해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정착, 앞으로 통일 사회에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홍용표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웃과의 연결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은 가족과 함께 탈북하지 않은 이상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한국엔 가족도 지인도 없기에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고 아프고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 외로움을 가장 힘들어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정착 기간 5년이 지나도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사회의 관심이 크지 않고, 이웃과도 단절돼 있기 때문에 점점 고립되는 것”이라며 “이들이 이웃과 연결될 수 있는 연락망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웃을 연결 시켜주고, 같은 북한이탈주민들끼리는 정서적인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 외로움을 덜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성호 이북5도위원회 함경북도 도시자 역시 북한이탈주민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것으로 마음 건강을 회복시키고, 이러한 노력이 신체 건강 확보로 이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 도지사는 “혼자 사는 북한이탈주민은 외로움에 힘들어 한다. 여기에 몸이 아프고 경제 활동이 어려우면 점점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며 “북한과 전혀 다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몸은 성인이지만 적응 능력은 아이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가족이 있으면 옆에서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에 대한 돌봄이 가능하지만 혼자 사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아파도 건강을 관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그들이 밖으로 나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가족이 돼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착 기간이 끝난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하나센터와 함께 다양한 지원 기관을 두고 ‘한국사람’으로서의 지원을 받게 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종아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하나센터에서 북한이탈주민을 관리하고 있는데 인력이 부족하고 접근성도 떨어져 현실적인 관리에 한계가 있다”며 “북한이탈주민의 위기 관리는 한 기관의 역할로만 두면 안된다. 사회에서 여러 방면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이 초기 정착 지원을 받은 뒤에는 한국 사람으로 받아 들여져야 하는데 ‘북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지원 자체를 하나센터에만 국한시키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한민국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이 보편적인 복지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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