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약속의 무게

김경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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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약속’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맺을 약(約)에 약속할 속(束)을 쓰고, ‘남과 앞으로의 무엇인가를 그렇게 하기로 정해둔 내용’을 뜻하는 말이라고 나왔다.

 

이 약속이란 단어, 참 신기한 습성을 가졌다. 말로 한 약속은 ‘언약’이라 불리고, 맹세하며 약속하는 일에는 혼인이나 사랑 같은 소위 달달한 단어가 따라 붙어 ‘서약’이라 불린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개인 등 쌍방이 일정한 규정을 정하고 이를 지키기로 하는 일에는 법률적 효력이 생겨 ‘계약’이 된다. 이 외에도 상약, 면약, 기약, 가약 등 다양한 약속을 이르는 단어들이 존재 한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약속 중 하나인 ‘공약’은 정부, 정당,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에 대하여 국민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주로 정치인이 하는 약속으로 여겨지다 보니 이상하리만큼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 붙어 ‘공약(空約)’으로 느껴지곤 한다.

 

지난해 12월13일 경기도의회에서 민주당 소속 한 도의원이 사직서를 냈다.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시끄러울 때였다. 대통령 탄핵 표결 투표함마저 열지 못한 뒤 화력을 모으려던 민주당의 의원총회장에서 사직 의사를 밝혔다.

 

그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비상계엄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신상 발언을 불허해 막았다. 벌써 여러번 막혔다’고 했다.

 

지역구 의원의 갑작스런 사직. ‘비례도 아닌 지역구 의원 아니냐’고 하자 그제야 ‘주민들이 이런 모습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처음으로 주민을 입에 담았다.

 

그런 그가 다시 입장을 냈다. 사직서는 ‘비상계엄을 사회적 혼란 정도로 표현한 경기도의회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고…(중략)신상발언 불허에 대한 좌절 표현’이었다며 이를 철회했다고 했다. 오해가 풀려서라고 했다.

 

비상계엄 당시 도의회 민주당 의원들은 즉시 국회로 달려갔고, 의장은 늦은밤 의회로 와 의장실을 지키며 도지사와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사회적 혼란 정도로 여긴 이는 없다. 혹여나 이를 사회적 혼란이라 여기거나 그리 표현했다 한들 그것이 진정 주민과의 약속을 내던져도 될 사유가 될까. 주민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그 전에 대화를 나눌 순 없었을까.

 

그의 입장문 말미 이런 약속이 담겼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시민들의 선택을 호소하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이번에는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 정치인의 약속을 약속으로 보지 않는 상황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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