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빈집 팬데믹’의 시대... 위축(萎縮)사회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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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구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곳곳에 낡아 무너지고 쓰레기가 쌓인 흉물스러운 빈집이 방치되고 있다. 경기일보DB

 

‘빈집’이 지역의 골칫거리로 처음 등장한 곳이 부산이다. 특히 바다 하나 건너 영도구 일대가 심각하다. 여기도 연간 100만명 넘는 관광객의 ‘핫플’이 있다. 그러나 길 건너엔 금방 무너질 듯 쇠락한 동네가 공존한다. 2023년 기준 부산 빈집이 11만4천245채다. 5년 사이 15% 늘었다. 전체 주택 수의 9%, 열 집 건너 하나가 빈집이다. 부산시는 물론 구·군들도 빈집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중이다.

 

‘빈집 팬데믹’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처음 한두 집에서 시작해 빠르게 번져간다. 빈집이 생기면 이런저런 피해가 옆집으로 넘어온다. 동네 탈출 현상도 빚어진다. 사회적 경제적 투자도 멈춰선다. ‘깨진 유리창’으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상점가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빠르게 슬럼화한다는 이론이다. 보통 일이 아니다.

 

인천에서도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미추홀구 도화동이나 동구 만석동 등에서는 10년 넘은 빈집도 많다. 세월과 함께 낡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지경이다. 온갖 쓰레기가 마당을 넘쳐 골목길까지 막는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이 많은 원도심에서 더하다. 주민들은 우후죽순격이라 한다.

 

현재 인천 전체 빈집은 2천962채에 이른다. 이들 빈집은 중구가 28.7%로 가장 많다. 다음 부평구, 미추홀구, 동구 등의 순이다. 72%는 원도심에 있다. 그중에서도 노후 저층 주거지에 몰려 있다. 한곳에 빈집들이 몰리면 지역 공동화가 진행된다. 이런 빈집밀집구역에 몰려 있는 빈집이 661채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빈집은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나아가 이웃들의 정주여건을 급속히 떨어뜨린다. 구조물 상태가 나빠 당장 철거해야 할 3·4등급 빈집도 1천여채에 이른다.

 

그러나 지자체들의 빈집 정비는 지지부진하다. 소유주의 동의 등 절차가 많다. 연락이 안 닿거나 재개발 등의 기대로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5년간 철거 및 개량, 안전조치 등이 이뤄진 빈집이 253채에 그쳤다. 주차장, 소공원, 쉼터 등 공공공간 활용은 138곳뿐이다. 남동구가 3년간 무상 사용 동의를 얻어 동네 개방주차장으로 만든 것이 가장 최근 사례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일찍 빈집 사태가 시작됐다. 선진국병의 하나인가. 과거 경제도 인구도 성장 일변도이던 때는 없던 걱정이다. 그러던 성장사회가 어느 사이 급속히 위축(萎縮)사회로 돌아선 것이다. 내 집 마련은 더 힘겨워지는데도 한편에선 버려진 빈집이 골칫거리다. 위축사회의 아이러니다. 인천시가 ‘빈집세’ 도입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결국 소유주의 관리책임을 엄격히 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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