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느닷없이 총을 든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명분은 마적 토벌이었다. 그런데 끔찍했다. 처참한 학살도 이어졌다. 끊임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였다.
이 대목에서 참으로 이상한 점이 있다. 습격을 감행한 병력이 일본인들만 골라 무차별 살해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영사관에서 일본 경찰 간부의 가족 등이 이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전대미문의 천인공노할 사건이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사건이 발생한 건 중국 만주의 한복판인 훈춘이었다.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동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도시다.
19세기 후반부터 한반도에선 조선인이 많이 건너와 상주하던 곳이다. 주민의 80%가 조선인이었다.
3·1독립운동 이후로는 더 많은 조선인이 이주했다. 그래서 독립군도 결성되고 항일 무장투쟁도 펼쳐졌다. 총독부 입장에선 그야말로 ‘눈엣가시’였던 곳이다.
그러자 일제는 이들을 없애기 위해 병력을 투입할 구실을 꼼꼼하게 찾기 시작했다. 아주 흉악한 모략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활동 중인 중국인 마적 수령 장강호(長江好)를 매수해 마적단 400여명이 훈춘을 공격하도록 종용했다. 마적들은 최우선으로 훈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했다.
그리고 시부야(渋谷) 경부의 가족 등을 포함해 일본인 9명을 살해했다. 그것도 부녀자들을 말이다.
일제는 이 사건을 빌미로 마적 토벌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나남사단(羅南師團)을 비롯한 대규모 군대를 훈춘으로 출동시켰다. 이어 조선인과 독립운동가를 무차별 사살했다. 한민회와 독립단조직 등도 철저하게 파괴했다.
독립군의 활동 기반으로 여겨지던 조선인 학살에 역점을 뒀다. 훈춘에서 조선인 242명이 학살당했다. 이 사건을 시발로 일본군의 만행은 그치지 않았다. 105년 전인 1920년 이맘때 발생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또다시 아픔을 겪는다는 교훈은 그래서 오늘도 유효하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