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을사년

최현호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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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다. 지난 연말 한 해를 평안히 넘기는가 싶었는데 난데없는 비상계엄이 온 국민을 숨죽이게 했다. 이어진 대통령 탄핵 정국은 새로운 해를 맞아서도 혼란을 부르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 체포를 두고 온 국민이 한숨을 쉬고 있다. 당장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맞이하고 있고, 세계는 더 세진 미국의 우선주의에 따른 관세 정책에 대비하려 숨 가쁘다. 21세기 글로벌 대항해 시대에서 선장 없는 대한민국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선원들은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1905년 을사년,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가해진 압박과 조정 대신에 대한 회유로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을 맺었다.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일본군을 동원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으로, 불평등 조약이다. 대한제국의 외무대신 박제순, 일본 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에 의해 체결됐다. 고종이 거부하고 내각의 반대도 있었지만 을사오적의 찬성으로 나라는 혼란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백성은 나라를 잃게 됐다.

 

지난 연말 개봉한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에서 이토 히로부미 역을 맡은 일본의 명배우 릴리 프랭키가 내뱉은 대사가 관객들의 마음을 강하게 때렸다. 온·오프라인상 공감의 글과 말이 이어졌다. 대사의 진위와 관계없이 이 시국을 관통하는 말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라고 했다. 이런 ‘이등이’를 안중근 의사는 “까레아 우라(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저격했다. 대한민국 현 시국에서 과연 영웅은 누구일지 되뇌게 하는 장면이다.

 

나라가 두 동강 났다. 하지만 2025년 현재 그 두 동강 난 나라가 다시 두 쪽이 난 모습이다. 서로가 적이다. 이 나라가 상대할 진짜 적은 누구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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