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일본은 왜 시간의 벽으로 도주할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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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우울한 소식이 또 들려왔다. 일본 이야기다. 이 나라의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가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된 한반도 출신 군인·군무원을 명부에서 빼달라는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해서다.

 

최고재판소는 최근 한국인 합사자 유족 27명이 제기한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소 소송에서 제척 기간인 20년이 지났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앞서 원고들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 등을 대상으로 합사 철회, 손해 배상, 사죄문 게재, 유골 양도 등을 요구했다. 이들이 청구한 배상액은 단돈 1엔(약 9원)이었다.

 

그러나 최고재판소는 원고의 청구 중 야스쿠니신사에 합사자 정보를 제공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 여부에 관해서만 판단했다. 사안의 핵심인 정보 제공의 위법성이나 야스쿠니신사 합사 문제 등은 다루지 않았다.

 

양심이 있는 일본 언론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본질을 회피했다는 게 핵심이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철회를 원했던 한국인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일본 사법부에 대해 “‘시간의 벽’으로 도주했다”고 꼬집었다. ‘시간의 벽’은 최고재판소가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정 기간인 제척 기간을 주된 판결 근거로 제시한 것과 연관된 것으로 분석된다.

 

좀 더 들여다보자. “(한국인) 합사는 1959년 10월보다 이전이어서 이로부터 20년이 지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합사와 관련해 (최고재판소가) 1심과 2심에선 초점을 맞추지 않았던 옛 민법의 제척 기간을 토대로 위헌 심사를 피한 듯하다.”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언론들은 일제가 전쟁을 벌일 때는 일본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가 사실상 국교였으나 전쟁이 끝난 뒤 제정된 헌법은 국가와 관련 기관에 ‘어떤 종교 활동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이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윤택할 수 있어도 결코 문명국 지위에는 올라설 수 없는 까닭은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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