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회사’ 영풍 실적 악화 불가피
MBK파트너스와 함께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추진 중인 영풍 장형진 고문의 장남 장세준 부회장이 이끄는 코리아써키트가 지난해 역대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적자 폭이 무려 4배 이상 확대되며 순손실 규모가 1천200억원을 넘어섰다. 코리아써키트가 영풍의 자회사인 만큼, 영풍의 연결 실적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리아써키트는 지난해 연결 기준 당기순손실 1천21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3년 -283억원의 순손실에서 4.3배 이상 적자가 커진 수치다. 이로써 코리아써키트는 2023년에 이어 2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사상 최악의 실적을 냈다.
눈에 띄는 점은 지난해 4분기에만 대규모 순손실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2024년 3분기까지 코리아써키트의 누적 연결 당기순이익은 -144억 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적자 폭을 크게 확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4분기에만 1천억원이 넘는 순손실이 발생하면서 연간 기준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게 됐다.
이에 대해 코리아써키트 측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라 현금창출단위(CGU) 손상 검토 결과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발생해 당기순손실이 3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유형자산은 공장설비, 토지, 건물, 기계, 차량운반구 등을 포함하며, 자산 가치가 기존 장부 가치보다 현저히 하락했을 때 손상차손으로 인식된다. 손상차손이 발생하면 기업의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된다.
코리아써키트는 인쇄회로기판(PCB) 제조·판매를 주력으로 하며, 경기 안산과 파주, 베트남 등에 6개 사업장을 운영 중이다. 다만 회사 측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장에서 손상차손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4분기에 특정 사업장의 유형자산 가치가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대규모 적자는 영풍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써키트는 영풍의 자회사로, 실적 악화가 영풍의 연결 재무제표에도 반영된다. 영풍은 지난해 석포제련소의 가동률 하락으로 인해 생산이 위축되면서 실적 부진이 예상된 가운데, 여기에 코리아써키트의 1천200억원대 순손실까지 더해지면서 연결 기준 적자 폭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영풍은 지속적인 실적 부진과 석포제련소의 환경·안전 문제로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차기 그룹 경영을 책임질 장세준 부회장의 코리아써키트 실적 악화까지 겹치면서 그의 경영능력에도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9월부터 본격화된 고려아연과의 분쟁 과정에서 영풍과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개편 및 경영 능력에 대한 평가가 주목받고 있다”며 “장형진 고문의 장남이자 영풍 최대주주인 장세준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코리아써키트의 실적 악화는 장씨 일가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영풍과 코리아써키트 등 그룹 전반에 걸쳐 장씨 일가의 경영 능력과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이 핵심소재와 전략광물의 수출을 규제하면서,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되는 고려아연에 대한 영풍의 적대적 M&A가 성공할 경우 국내 산업계 및 국가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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