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연 문화체육부 부장
맥켄지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18세에서 26세 정도의 청년이었다. 영리해 보이고 용모가 단정한 한 청년은 아직도 한국 정규군의 구식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군복 바지를 입었고 이들 중 두 사람은 흐느적거리는 낡아 빠진 한복차림이었다. 가죽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설마 이 사람들이 몇 주 동안이나 일본군에 항전할 것을 선언해 온 사람들이라니!’ 1907년 경기 양근군(현재 양평군) 인근에서 의병을 만난 종군기자 맥켄지는 1년 뒤 ‘대한제국의 비극’에 글로 옮겼다. “군인(의병)의 영롱한 눈초리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봤을 때 나는 확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동포들에게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이름을 아는 이들은 없다. 무명의 의병들은 나라를 뺏긴 역사와 맞서며 역사를 이어갔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 이처럼 국가를 위해 희생했으나 기억되지 못한 한말 무명의병을 재조명하고 기념하는 작업이 경기도에서 시작됐다. 1895년 을미의병이 봉기된 이후 본격적으로 의병전투가 시작된 경기도에서 나선 의미 있는 일이다.
경기문화재단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은 12일부터 3주간 매주 수요일 ‘강산의 의로운 장부들: 대한제국기 경기도 무명의병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역사문화강좌를 진행한다. 또 의병과 관련된 실태조사와 무명의병 기념을 위한 중장기 계획이 마련될 예정이다.
한 세대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은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윗세대에서 내려오는 기념을 통해 과거의 사건은 재생되고 현재를 성찰하게 한다. 기념은 과거를 현재화하는 힘이 있다. 반복된 기념은 전통이 돼 현재와 미래의 공동체에 정체성과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광복 80주년과 을사의병 120주년, 을미의병 130주년을 맞은 올해다. 우리가 잊고 있던 이들의 희생과 숭고한 가치가 현재에 어떤 질문을 던질지, 어떤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