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머뭇거릴 필요 없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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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는 없는 게 있다. 절기가 그렇다. 태양의 황도상 위치에 따라 계절적으로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다. 황도에서 춘분점을 기점으로 15도 간격으로 점을 찍어 모두 24개로 나뉜다. 아주 오래된 동양의 우주과학이다.

 

3월5일은 얼음이 깨지는 소리에 놀라 개구리들도 뛰쳐나온다는 경칩(驚蟄)이다.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의 절기다. 한자로도 겨울잠 ‘칩(蟄)’에 놀랄 ‘경(驚)’이다. 삼라만상이 소생하는 시기다.

 

이맘때면 농민들은 선농제(先農祭)를 지내면서 차분하게 봄을 맞이하고 농사를 준비한다. 둑제(纛祭)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군대를 출동시킬 때 군령권을 상징하는 둑(纛)에 지내는 제사다. 보리싹점도 있다. 들녘에서 자라고 있는 보리 싹의 성장 상태로 그해 풍흉을 예측하는 농점(農占)이다. 보리의 싹이 추운 겨울을 잘 견뎌내고 생기 있게 잘 자라고 있으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개구리점은 어떨까. 울기는 하겠지만 울지 못하면 논에선 좋은 벼를 거둘 수 있다. 개구리가 울부짖으면 논에서 모내기 상앗대를 끌어당기기 좋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서서 들으면 그해는 일이 많아 바쁘다. 누워 들으면 편안하게 농사를 지을 수도 있다.

 

봄은 영어로 스프링(Spring)이다. 용수철도 철자는 같다. 봄과 스프링, 두 단어 모두 솟아 오른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봄은 솟아 오르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 솟아 오르는 대표적인 건 새싹이다. 봄이 오면 땅속에 있던 씨앗들이 발아해 땅을 뚫고 올라온다.

 

새싹이 올라오는 건 봄의 전령사여서다. 쑥도, 냉이도 한 뼘씩 웃자란다. 둔덕과 야산 등지에서 쑥과 냉이 등도 캘 수 있다. 소생의 계절을 맞아 우리의 믿음도 새싹과 같이 솟아 올라야겠다. 경칩이다. 어깨를 활짝 펴고 솟아오르는 계절을 맞이하자.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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