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캐나다·멕시코, 반미 정치로 트럼프 공세 땐 한국 여론 악화 반미에 친미가 졌던 2002 대선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13일. 양주군에서 효순·미선양 사고가 발생했다. 두 여학생이 미 육군 공병전차에 깔려 숨진 사고다. 발생 자체는 ‘과실치사 사고(accident)’였다. 하지만 많은 기록에는 ‘사건(incident)’으로 남았다. 충분한 사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미 군사법원이 사고 운전병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여론이 악화됐고 반미 시위가 일었다. 광화문 촛불시위 역사의 시작이다.
촛불은 대선으로 옮아갔다. 보수 쪽이 ‘반미’를 끄집어냈다. 노무현 후보의 발언을 부각시켰다. 그중에 “반미면 어떠냐”는 발언이 있었다. ‘효순·미선양 사고’에서 잉태한 반미가 덮고 있던 차였다. 젊은 표심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노 후보가 당선됐다. 평론가들이 꼽은 세 가지 승인(勝因)이 있다. 정몽준과의 단일화, 수도 충청 이전, 그리고 반미 환경 조성이다. 반미 구호가 이긴 최초의 대선이었다.
2025년 3월, 외신(外信)이 쏟아진다. 캐나다의 반미가 장난 아니다. ‘캐나다산을 사라(Buy Canadian Instead)’는 구호가 나붙었다. 온타리오주는 미국에 보내는 전기료를 올렸다. 더그 포드 주지사가 ‘아예 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반미를 초래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다. 취임 전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만들자”고 했다. 취임 후엔 “마약 유통 책임 있는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늘 그렇듯이 여론은 정치로 갔다. 원래 집권 자유당의 인기는 바닥이었다. 트럼프 취임 직전에는 20%였다. 이게 최근 들어 38%까지 급상승했다. 친미에 매달리던 보수당은 45%에서 36%로 추락했다. 보수당 대표 피에르 폴리에브르의 트럼프 흉내도 한몫했다. ‘캐나다 우선주의(Canada First)!’ 국민들은 이것까지 꼴보기 싫다며 외면했다. 국경 맞댄 캐나다 정치는 지금 ‘반미=OK’, ‘친미=NO’다.
인접한 멕시코의 정치도 비슷하다.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셰인바움 대통령이 선창한 구호다. 지지율이 85%까지 올랐다. 바다 건너 유럽연합(EU)은 철강 25% ‘트럼프 관세’를 맞았다. 보복으로 위스키 50% 관세를 때렸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핵 공유’ 목소리도 냈다. 우크라이나는 대통령이 망신을 당했다. 우방의 변절이라는 현실에 국민이 분노한다. 이게 지금 세계 정치에 나타나는 경향성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관세 폭탄이 자동차·반도체를 향한다. 관세 25% 때 매출 예상 타격은 ‘-20%’다. 방위비 분담도 있는데, 1기 때 트럼프 워딩이 있다. ‘한국은 50억 더 내라. 달러($)다’. 주한미군 감축은 협상의 지렛대다. 핵 협상에서 한국이 배제될 수도 있다. 캐나다·멕시코는 ‘관세’, EU는 ‘관세·안보’,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압박 당했다. 이 세 가지가 한국엔 다 해당된다. 이쯤되면 생존 문제다.
이 엄청난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눈앞의 정치가 모두를 눈멀게 했다. 지금도 여론은 그쪽에 쏠려 있다. 15일에만 10만4천명(경찰 추산)이 서울에 몰렸다. 탄핵 찬성 4만4천명, 탄핵 반대 6만명. 그런데 그 반대 집회에 성조기가 있다. 꽤나 익숙한 모습이다. 우파가 성조기에 부여하는 가치가 있다. ‘1945년 광복-1948년 건국-이승만 대통령-1950년 6•25전쟁’. 자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표하는 거다.
그런데 이 가치가 시들해질지도 모르겠다. 살폈듯이 세계가 반미로 가고 있다. 트럼프 공세가 불러온 역(逆)이다. 그 공세는 곧 우리를 향할 것이다. 선택하기 힘든 순간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도 성조기를 흔들 수 있을까. 그 모습에 격려를 보낼 국민이 있을까. 안 그럴 것 같다. 달라질 것 같다. 작금에는 ‘민감국가(SCL)’ 문제까지 터졌다. 이 칼럼에서는 계산에 넣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걱정은 충분하다.
반미가 친미를 이겼던 2002년 대선. 그 먼지 쌓인 기억을 새삼 꺼내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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