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학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
1960~70년대는 SF영화와 문학의 인기 그리고 록 음악의 부흥이 만나면서 가장 특별한 문화적 융합이 일어났던 시기다. 당시 SF는 비디오, 커버 아트, 우주복 등의 테마에서뿐만 아니라 전자 사운드의 음악에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영국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인 데이비드 보위는 그런 융합을 주도한 인물이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9일 전인 1969년 7월11일 보위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노래는 ‘메이저 톰’이라는 상상의 우주 비행 조종사가 우주 미아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보위는 1968년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큰 감명을 받았고 노래 제목은 그 제목을 변주해 스페이스 오디티로 결정했다. 보위는 이 우주 영화를 통해 얻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영감을 평생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겼다.
그 후 보위는 깡마른 체격에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자기의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 ‘알라딘 세인’ 그리고 ‘씬 화이트 듀크’ 등으로 변신해 우주에 홀로 버려진 이른바 소외된 존재의 이미지를 쌓는다. 1972년 정규 5집 앨범 ‘화성에서 온 거미들과 지기 스타더스트의 흥망성쇠’에서 지기 스타더스트를 소개한 이후 영화 ‘지구에 떨어진 남자’(니컬러스 로그 감독·1976년)에 출연하기도 했고 1973년 4월 발매된 여섯 번째 정규 앨범 ‘알라딘 세인’에서는 말 그대로 알라딘 세인으로 변신해 새로운 음악적 스타일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1976년 정규 10집 앨범 ‘스테이션 투 스테이션’을 발매하면서 ‘씬 화이트 듀크’를 세상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페르소나들은 록 음악, 드라마,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알라딘 세인은 패션, 젠더의 모호성, 화려한 퍼포먼스가 결합된 글렘 록의 시초가 됐으며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에서는 보위가 직접 열연한 FBI 요원 필립 제프리스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거기서 제프리스는 현실과 꿈, 시간과 정체성의 경계에서 소외된 존재로 설계됐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프레스티지’에서는 삼고초려로 모셔온 보위가 니콜라 테슬라로 등장한다.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킬리언 머피의 실루엣은 씬 화이트 듀크에서 따온 것이다. 닐 게이먼 작품 ‘샌드맨’의 ‘루시퍼 모닝스타’ 역시 보위의 페르소나로부터 영향을 받은 캐릭터다.
페르소나와 더불어 그의 영향력은 상상의 세계를 넘어 현실의 과학 세계에도 가닿았다. 2008년 독일의 거미학자 피터 예거는 새로 발견된 사냥거미에게 ‘헤테로포다 데이비드보위’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2015년에는 스페인에서 2008년 발견된 소행성의 이름을 ‘342843 데이비드보위’라고 최종 결정짓기도 했다. 여섯 번째 정규 앨범 알라딘 세인의 표지에는 데이비드 보위의 얼굴이 등장하는데 그 얼굴에는 번개 모양이 그려져 있다. 벨기에 천문학자들은 이 번개 모양을 일곱 개의 별로 구성한 후 그 별자리를 2016년 1월13일 제정해 보위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보위가 타계한 1월10일로부터 3일이 지난 후의 일이다.
2018년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팰컨 헤비 로켓을 이용해 테슬라 로드스터를 우주로 발사했다. 당시 테슬라 로드스터에서는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정말로 ‘스타맨’이 돼 자신의 노래와 페르소나를 실제 우주에 새긴 것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은 그렇게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 페르소나에게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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