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한 프랑스 국적 노에미 수녀, 마지막까지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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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에미 수녀가 지난 2017년 수원시 권선구 세류 2동에 위치한 건강미술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헌정 전시회에서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경기일보 DB

 

“작은 것도 가족처럼 나누는 한국 사람들이 좋다”고 말한 자신의 삶이 곧 나눔이었다. 고향에서 9천㎞ 떨어진 한국에 그는 온전한 사랑과 헌신을 나누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한국의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한 프랑스 국적의 노에미 데레사 수녀가 지난 14일 선종했다. 향년 98세.

 

프랑스 상파뉴가 고향인 노에미 수녀는 종신서원을 한 이듬해인 1957년 3월 29일, 서른 살의 나이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한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한 외증조부에게 한국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터라 그의 마음 속엔 늘 한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곧장 가장 낮은 곳으로 향했다. 한센병 환자들이 정착해 있던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환자들의 거즈 등을 빨며 이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이후 노동자들과 생활하면서 수도생활에 임했다. 대구의 안경공장과 양말공장, 서울 청량리의 한약상 등에서 일하며 가난한 노동자들과 아픔을 함께 나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사회 곳곳을 돌며 봉사와 희생을 몸소 실천해 온 그는 심장병 치료를 위해 2008년부턴 수원시 장안구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 평화의 모후원’에서 요양하며 지역 노인들과 함께했다. 

 

지난 2017년엔 노에미 수녀의 헌신과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리고자 수원시와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 주관으로 헌정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색연필과 크레파스의 소박한 재료로 자연과 사람, 마을을 담아냈다.

 

그는 전시회가 열렸던 당시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림 속 모습처럼 우리 한국 사람들이 작은 것도 가족처럼 나누는 삶을 계속 살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전시회를 개최했던 신현옥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장은 “수녀님의 그림에선 한국의 전통과 정서가 묻어날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셨다. 이름 없는 강인한 들꽃으로 살다가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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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모후원 영안실에 노에미 데레사 수녀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정자연기자 

 

고령으로 더 이상 사도직 현장에서 일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어 고국에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수녀는 한국에 남는 길을 택했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었다는 믿음에서다.

 

수녀의 선종에 지역사회와 프랑스 대사관 등에서는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이날 오전 누리집 등을 통해 “재한 프랑스인 공동체 원로 노에미 뒤셴 수녀의 선종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1957년 3월 처음 한국에 도착했던 노에미 수녀는 향년 98세로 선종하셨다”라고 전했다.

 

수원시장 재임 시절 노에미 수녀의 사연을 접하고 요양원을 찾아가 직접 감사의 뜻을 표하고 헌정 전시회를 추진했던 염태영 국회의원은 고인이 모셔진 평화의 모후원 영안실의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그는 이어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수원시장 시절, 수녀님이 키가 커서 맞는 휠체어가 없어 힘들어 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휠체어를 맞춤형으로 제작해 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프랑스 본국의 조카 분들이 병약해지신 수녀님을 기꺼이 모시겠다고 해도 여기가 고향이라며 한사코 마다해 하셨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평생 낮은 이들을 위해 헌신해 온 그의 빈소는 평화의 모후원 영안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그의 삶처럼 소박하고 검소하게 차려졌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서울 성모병원에 기증하며 떠나는 순간까지 나눔과 사랑을 다한다. 16일 오전 평화의 모후원 수녀들과 함께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 뒤 고인의 시신은 서울 성모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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