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자 처벌 사각지대… 중처법 철퇴 ‘시공사 몫’

현장 운영 주체 등 시공사만 처벌... 설계·예산 주도한 발주자 제외
광명 신안산선 공사장 붕괴 사고... 발주기관 ‘국토부’ 처벌 여부 주목

image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로 기사와 직접적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광명 신안산선 복선전철 제5-2공구 지하터널 붕괴 사고 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예정된 가운데, 좁고 기계적인 법 적용 대상 선정 구조가 실효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사 현장에서 사망, 부상자가 발생하면 통상 시공사에 책임 소재가 집중되는데, 정작 안전 관리에 영향을 미치는 공사 구조, 예산, 공기를 결정하는 ‘발주자’는 처벌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17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현행 중처법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현장에서 한명 이상 사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중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현장을 ‘지배·운영·관리’한 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책임 소재는 대부분 원청 시공사, 도급을 받은 하청 시공사에게만 돌아가고 초기 설계, 공사 기간 및 예산을 책정, 변경한 발주자는 법망 밖에 남는 경우가 빈번한 상태다.

 

실제 2020년 4월 38명이 숨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공사 현장 화재는 충분한 환기 없이 용접 작업을 하다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고, 당시 발주자인 한익스프레스가 시공사에 공기 단축을 요구한 정황이 포착됐다. 하지만 법원은 발주처가 현장을 직접 통제하거나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2022년에도 춘천교육지원청이 발주한 신축공사 현장에서 3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지만, 시공사 대표와 현장소장에게만 중처법이 적용됐다.

 

광명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의 경우 발주자인 국토부가 사업 전반을 감독하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수사는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에 한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행 중처법은 공사 현장을 실질 지배·운영·관리한 주체에 형사 책임을 묻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발주자는 직접 현장을 관리하지 않아 법리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 대법원이 발주자도 현장을 ‘지배·운영·관리’한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광명 사고도 적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0년 인천항만공사가 발주한 항만 갑문 보수공사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 1·2심 재판부는 발주자는 무죄라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인천항만공사가 공사를 지배·관리한 것으로 판단, 책임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호남대 교수)은 “발주자는 공사 설계와 더불어 공기, 즉 비용을 정하는 과정에서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발주자 역시 공사 현장 위험 징후를 인지, 관리해야 하며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