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를 거스르는 루저들, ‘썬더볼츠*’의 감흥 [영화와 세상사이]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4월30일 극장가를 찾은 영화 ‘썬더볼츠*’는 미국 인기 코믹스 기반 프랜차이즈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이하 MCU)’의 최신 작품이다. MCU의 출발을 알렸던 ‘아이언맨’이 2008년 관객에게 첫선을 보였던 걸 떠올려 보면 벌써 17년의 세월이 쌓였다. 자연스레 대중 역시 이들과 함께해 온 골수팬들부터 높아져 버린 진입장벽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부류들까지 다양하게 포진한 상태다.

 

■ 모일 필요 없는 루저들?…‘억지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썬더볼츠*’는 전형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도 먼 사고뭉치들을 조명한다. 전직 첩보요원, 살인청부업자, 암살자, 용병 등이 한데 얽힌다. 음지에서 궂은일을 처리해 왔던 이들이 자신의 고용주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순간을 응시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썬더볼츠’는 어두운 과거와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갈 동력과 명분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는 루저들이 모여 결성한 이들 팀의 활동명이다.

 

‘썬더볼츠’는 결성 목적, 이유, 명분이 온전치 않다. 팀을 꾸려도 그만, 꾸리지 않아도 그만일 뿐이다. ‘썬더볼츠’를 두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안티 히어로 집단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들의 행색을 보아 하니 특별한 목적과 동기도 없이 오합지졸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영웅으로 생각해주는 이들이 있는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훨씬 많다.

 

이렇게 말해볼 수 있겠다. ‘썬더볼츠*’는 ‘억지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다. 극중 CIA 국장 발렌티나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자 썬더볼츠 구성원들과 강화인간 실험체 센트리를 묶어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어벤져스’라고 소개한다. 물론 그들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들이 영웅 집단이 되고 싶어서 됐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서로 팀을 이루는 것 자체에 대한 필요성 내지는 유효성에 관해 의문을 표하고 있지 않나. 발렌티나는 그저 극중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썬더볼츠를 이용했을 뿐이다.

 

■ MCU의 현주소를 인식…나를 돌아보는 영화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문제는 관객들의 현실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인데 그건 바로 MCU의 인기가 최절정에 달했던 ‘어벤져스: 엔드 게임’(2019년년) 개봉 즈음 이후 2020년대 들어서는 길을 잃고 표류하는 가운데 억지로 썬더볼츠를 ‘뉴 어벤져스’로 만들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환경이라는 걸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를 자조하듯 엔딩 크레딧에는 썬더볼츠가 어째서 어벤져스를 대체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하는 언론, 커뮤니티 등 미디어 환경 속 대중의 반응들이 나열된다. 더 중요한 건 2차 쿠키 영상에서 나오듯 썬더볼츠 구성원 자신들도 어벤져스를 스스로 대체할 수 있을지 확신과 우려가 뒤섞인 애매모호한 마음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

 

한마디로 ‘썬더볼츠*’는 MCU의 현주소를 스스로 인식하고 풍자하는 데 집중하는 영화다. 그러니까 ‘썬더볼츠*’는 지금 MCU가 처한 모든 상황을 단 하나의 영화로 압축한 근사한 축소판인 셈이다. 결국 이 영화의 가치는 이처럼 스스로를 내려놓고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데에서부터 찾아낼 수 있다. 내가 어떤지를 돌아보고 내 주변이 어떤지를 돌아볼 때 변화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 멀티버스의 편의주의를 거스르는 진심 어린 선택들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그렇다면 ‘썬더볼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는 이 영화가 멀티버스(다중우주)와 평행세계 개념으로 뒤덮인 현 시점의 MCU에서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영화가 아무리 진정성 있는 서사를 구축하더라도 이들 역시 일회용 도구처럼 소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 이제 이 세계관에서 ‘진짜 유일한 나 자신’을 찾기는 어렵다. 여러 우주에 걸쳐 수많은 토니 스타크(아이언맨)가 존재하고 심지어 외계 종족이 변장한 존재가 내가 알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어서다. 앞으로 나올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다. 제작진은 편의에 따라 이미 1번 토니를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죽였고 2번 토니를 희대의 빌런 닥터 둠으로 매만져 ‘어벤져스: 둠스데이’(2026년)에 등장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존재의 도구화가 너무나 손쉬워진 지금 ‘썬더볼츠*’는 어떤 길을 제시했는가. 캐릭터의 조형과 빌드업에 있어 굉장히 귀찮고 힘든 경로를 스스로 택하지 않았나. 옐레나를 비롯한 썬더볼츠 구성원들은 각자의 과거를 마주하고 고립된 밥에게 손길을 내밀어 그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 옐레나도 밥도 모두 언제 어디서든 공존하는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취향에 따라 입맛에 따라 영화 제작진의 편의에 따라 적당한 구실을 대면서 345번 지구의 옐레나, 142번 지구의 버키, 2944번 지구의 밥을 한데 모아 팀을 이루면 될 일이었다. 더욱이 최근 MCU의 영화 제작 기조로 보면 이런 루저들의 서사따윈 구축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하지만 ‘썬더볼츠*’는 비록 이들이 고유한 존재가 아닐지라도, 어느 우주에서는 이들보다 더 나은 존재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지라도 지금 이 시점에 이곳에 모인 이들이 서로 부대끼고 뒹굴며 스스로를 마주하고 과거를 극복하는 과정을 굳이 담아 내려고 하는 셈이다.

 

멀티버스에선 언제나 캐릭터가 손쉽게 소비된다. ‘데드풀과 울버린’(2024년)에 등장했던 뱀파이어 헌터 ‘블레이드’ 역시 그 캐릭터를 오랫동안 연기했던 웨슬리 스나입스가 팬 서비스 차원에서 등장했을 뿐 캐릭터에서 대한 헌사나 존중을 보여준 건 아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년)에 등장했던 두 명의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 앤드루 가필드) 역시 서사의 기능적인 전개를 위해 동원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던 걸 떠올려 보자.

 

그런 점에서 멀티버스 사가의 여러 작품과 향후 나올 어벤져스 5·6편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썬더볼츠*’가 택한 노선은 멀티버스 사가에서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감흥을 선사한다. 이들이 어벤져스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다. 같이 육체를 맞대고 마음을 나누는 교감이 전해진다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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