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우리는 행복할 때와 불안할 때 언제 더 많이 소비하는가.
소비는 불안과 더 큰 관계가 있다. 불안과 소비 행태는 다양한 지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는 88.4로 전월 대비 12.3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정치적 불안정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 지난해 12월 기준 금융스트레스지수는 82.9로 계엄 사태가 발생하기 전 주보다 8.1포인트 상승했다. 또 딜로이트의 ‘컨슈머 시그널’은 한국의 과시성 소비금액이 월평균 59달러로 조사 대상 20개국 중 4위를 기록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경제적 스트레스 속에서도 자기 만족을 위한 지출이 지속되고 있음을 뜻한다.
불안은 소비행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우선 정서적 위안을 얻기 위해 물건을 구매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달콤한 음식이나 옷, 화장품 등 자기를 위로할 수 있는 품목을 구매한다. 어린아이가 인형을 꼭 껴안는 것처럼 어른들도 물건을 소유하거나 만지는 행위 자체로 불안을 완화할 수 있다.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 쾌감을 유도하는데 불안한 상태에서 이를 극복하고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잊게 해준다. 특히 촉감이 좋거나 아름다운 제품은 감각적으로 위안을 준다. 쇼핑은 일종의 ‘작은 행복’을 즉각적으로 제공하는 보상시스템이다.
또 소비자는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 높을 때 자아 상태를 보상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확인받기 위해 특정 제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특히 명품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시각적 도구인데 국내 명품시장은 지속적인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3대 명품 브랜드(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는 2024년 한국 시장에서 매출이 전년 대비 9.76% 증가했다. 특히 젊은층의 명품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들보다 뒤처지거나 부족하다고 느낄 때,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타인의 화려한 삶을 수시로 엿보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찾아오는 불안감은 다양한 소비 방식을 전시하며 ‘좋아요’와 댓글을 통해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고 느끼게 된다.
이와 반대로 불안이 오히려 소비를 줄이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면 사람들은 필수재 이외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보수적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소비자심리지수 하락은 자영업자의 폐업 증가와 관련지어 볼 수 있다. 지난해 자영업자의 폐업 신고 건수는 91만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신규 창업 대비 폐업률이 79.4%로 가게 10곳이 문을 여는 동안 여덟 곳이 문을 닫고 있음을 보여줬다. 경제 성장 둔화, 미국의 관세 정책, 체감물가 상승, 정치적 불확실성, 금리 변동성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소비심리를 위축시킨다.
소비는 불안을 일시적으로 줄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불안을 키우기도 한다. 충동구매 이후에 찾아오는 후회감, 그리고 지출 과다로 인한 카드 빚 등은 오히려 재정 상황의 불안전성을 확대시켜 개인의 심리적 불안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결국 소비는 불안한 감정에 대한 일시적인 해결책이고 심리적 회복의 도구로 작용하는 것일 뿐 문제 원인을 해결하는 장치는 결코 아니다. 나의 소비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단순히 즉흥적인 만족을 위한 것은 아닌지, 나의 경제력 범위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행복해서 소비하는 게 아니라 불안할수록 더욱 소비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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