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이 처음 제정됐다. 가정 내 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불거지면서 국가 개입의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법 취지는 가정의 평화와 안정 회복이었다. 따라서 일반 폭력행위와는 접근 방법을 달리한다. 대표적인 것이 경찰의 긴급임시조치다.
가정폭력범죄 신고를 받은 경찰은 직권으로 긴급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재발 우려 또는 상황이 긴급하다고 판단할 경우다. 퇴거 등 격리,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 이용 접근 금지 등이다. 그러나 이런 긴급임시조치도 추가 피해를 막는 데는 별 소용이 없다고 한다. 지키지 않아도 확인이 어렵고 처벌도 미약하다.
경기일보 사회면(11일자 7면)의 최근 사건이 있다. 인천 미추홀구 한 상가주택에 사는 50대 여성이 가정폭력 신고를 했다. 술에 취한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 했다. 2022년에도 한 차례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왔던 가정이었다. 아내에게서 100m 이내에 남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긴급임시조치다.
그러나 남편은 바로 옆 호실에 머물렀다. 옆 호실도 남편 소유였다. 아내가 있는 옆집을 찾아가 문을 열려 하거나 전화를 걸어댔다. 분리 조치만 믿고 있었던 아내는 더욱 놀랐다. 남편이 바로 옆집에서 지내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며 들어오려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긴급임시조치의 허술함은 지난달 경기 화성시에서 일어난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사실혼 관계에 있던 남성이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 지난 3월 피해 여성이 두 번째 가정폭력 신고를 해오자 경찰이 긴급임시조치를 했다. 가해 남성에게 접근 금지 및 통신 금지 조치를 했다. 피해 여성에게는 스마트워치도 지급했다. 가해자는 조치를 무시하고 범죄를 저질렀으며 피해 여성은 스마트워치 신고도 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문제는 긴급임시조치를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처벌은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그친다. 또 조치를 내린 경찰에서도 제대로 이행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위치추적, 통신 조회 등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 가정사에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하는 게 맞느냐는 것도 중대한 논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가정폭력이 집안싸움에만 그치지 않는다. 위의 화성 사건처럼 심각한 범죄로 비화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제 긴급임시조치는 ‘가정의 유지’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추가 범죄 차단’ 역할을 해야 한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확실히 지켜내는 긴급임시조치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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