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백성과 함께 즐긴다’... 문화강국의 여민락

조용경 작곡가·공연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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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제정된 국악진흥법에 따라 올해 6월5일 처음으로 ‘국악의 날’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해 서울 광화문에서는 ‘여민락 대축제’가 열렸다.

 

6월5일은 세종대왕이 지은 악곡인 ‘여민락’이 세종실록 116권에 최초로 기록된 날(1447년 음력 6월5일)이다. 이후 이달 내내 다양한 국악 공연과 행사, 교육 프로그램, 학술대회가 마련돼 있다.

 

축제의 주제인 여민락은 조선 세종 때 창작된 궁중음악이며 민간 풍류곡으로 수용된 것까지 포함한 관련 악곡을 총칭한다.

 

여민락이라는 이름은 맹자에 수록된 ‘백성과 함께 즐긴다’라는 뜻의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따온 것이며 조선 개국의 정당성 그리고 백성과 함께하는 통치 철학이 담겨 있는 ‘용비어천가’의 가사로 이뤄졌다.

 

백성과 소통하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여민락에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정치사상이 녹아 있다. 당시 궁중음악은 왕과 귀족만의 것이었지만 세종대왕은 음악을 백성과 함께 향유하고자 했다. 여민락뿐만 아니다. 음악을 체계화하기 위해 ‘정간보’를 만들고 중국 중심의 아악을 넘어 한국 고유의 향악을 존중하고 발전시켰다.

 

문화의 대중화, 문화의 평등을 추구하고 민속음악도 포용하며 문화의 중심에는 백성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음악은 단지 예술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닌 백성의 삶을 어루만지는 수단이자 도덕과 질서를 바로잡는 도구로 여겼던 것이다.

 

백성과 더불어 음악을 나누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여민락. 이런 점에서 여민락은 단순히 우리가 지켜 가야 할 전통음악 이상(以上)의, 오늘날 문화정책이 지향해야 할 이상(理想)이라 하겠다.

 

얼마 전 대학로 소극장에서 시작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 연출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 브로드웨이 44번가에서 일으킨 ‘21세기의 기적’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BTS는 그래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며 단독 무대를 선보였다. 그야말로 ‘K-문화’의 황금기다.

 

그러나 문화의 꽃을 피우기까지 우리나라는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일제강점기 억압 속에서도 국악은 사라지지 않았고 광복 이후의 혼란기와 6·25전쟁의 참화를 겪는 와중에도 민속예술은 민중의 숨결 속에서 꺼지지 않았다.

 

분단이라는 아픔과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전통 단절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문화예술은 시대의 고통을 품으며 조용히 숨을 이어갔다. 문화는 끊기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 더욱 단단해졌고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지키는 든든한 뿌리가 됐다.

 

그렇게 이어져 온 문화의 맥은 지금, 세계로 뻗어 나가며 K-문화라는 이름 아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산업적 성과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궁중에서 민간으로, 왕에서 백성으로,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음악을 모두의 즐거움으로 확장시키며 공동체적 문화의 원형이자 ‘함께하는 문화’의 본질을 상기시키는 상징인 여민락. K-문화의 시작에는 모두가 함께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문화의 씨앗을 만들어준 여민락의 정신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 민주주의의 초석인 것이다.

 

“백성과 함께 즐긴다”. 2025년 6월 새로운 대한민국에 여민락이 울려 퍼진다. 모두의 가슴속 깊은 울림과 함께 ‘글로벌 문화강국’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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