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의료 개혁은 어디로 가고 있나

목경열 보건학박사·경기도장애인체육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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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으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그는 대선 공약에서 의료 개혁을 주요 정책 분야로 제시하며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과 지역 의료 불균형 해소를 핵심 과제로 강조했다. 특히 공공의료사관학교 설립, 지역 의대 확대, 응급의료체계 개편, 국민참여형 공론화위원회 도입 등이 그 중심에 있다.

 

그러나 이런 공약은 전례 없는 의제라기보다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사회적 요구의 반복이다. 과거 정부도 의료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했지만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을 조율하지 못해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갈등과 불신을 키우며 개혁의 동력을 상실하곤 했다. 의료 개혁은 방향 제시만으로 부족하다.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강력한 리더십이 함께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공공의료 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보여줬다. 수도권에 집중된 의료 자원, 지방 중소도시의 응급 진료 중단, 농촌지역의 산부인과 및 소아청소년과 부족 등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존 격차를 초래하는 구조적 위기다.

 

공공의료사관학교는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는 핵심 공약이다. 공공의료에 헌신할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일정 기간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 복무를 조건으로 교육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군의관이나 사관학교와 유사한 모델로 단순한 교육기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교육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간 조율과 국회 입법, 의료계의 반발 등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은 전공의 집단휴진 사태로 좌초됐고 윤석열 정부의 정원 확대 방침도 의정 갈등만 심화시킨 채 사회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기존 3천58명에서 5천58명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발 인원의 산출 기준, 대학별 수용 여건 차이 등을 둘러싼 이견이 제기되며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재명 정부는 단순한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설계와 공공성 강화라는 방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2035년까지 의사 1만 명 추가 양성’이라는 계획도 교육 인프라 확충과 사회적 동의 없이는 공허한 숫자에 그칠 수 있다.

 

지역 의대 확대도 중요한 과제지만 정원 증가만으로는 실효성이 낮다. 지방 거점 병원과 연계된 수련 체계 마련, 지역 정착을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제공, 정주 여건 개선 등 교육–수련–취업이 연결된 지역 의료 생태계가 갖춰져야 한다.

 

공론화위원회 도입은 의료 정책의 신뢰성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민주적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사례처럼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숙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의료는 생명과 직결된 고도의 전문 영역이다. 단순한 여론조사나 원탁회의 수준을 넘어선 전문성과 숙의가 균형을 이루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결국 공공의료 개혁은 선언이 아닌 실행의 문제다. 인력 수급, 예산 확보, 법·제도 정비, 직역 간 조정 등 복합적인 과제를 두고 공정한 책임 분담을 이끌어낼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또 개혁의 우선순위와 속도에 따라 정책의 수용성과 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난 30여년간 국민은 매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을 통해 의료 개혁의 어려움을 체감해 왔다. 이제는 그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새로운 정부가 실천으로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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