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범법 가능성 10%
한효석 (부천교육연대 편집국장)
그 사회에서 어떤 제도를 갖추느냐에 따라 시민 의식과 생활이 바뀔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정부가 교통 법규위반 차량을 신고하는 사람에게 보상금을 주기로 하면서 이른바 ‘카파라치’라는 직업이 생겨났다.
카파라치들은 일반인들이 교통법규를 자주 위반할 만한 장소에 숨어서 사진을 찍는데, 심한 경우에는 하루 한 장소에서 불법으로 유턴하는 차량사진을 몇 천건씩 찍기도 한다.
그런 경우 그 지역 의원 사무실과 경찰서는 사진 찍힌 사람들의 항의전화로 불이 날 지경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진 찍힌 사람들끼리 서로 연락하여 법적으로 집단 대응하기도 한다. 경찰은 경찰대로 운전자들이 그곳에서 범법하지 않도록 차선을 고치거나, 장애물을 설치하거나, 안내 현수막을 달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교통경찰이 직접 나와 지도하기도 한다.
카파라치가 교묘한 지점을 찾아 사진을 찍어 이렇게 집단문제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에도 수천명의 운전자들이 그 장소에서 가슴을 졸이며 법규를 위반할 것이다. 그리고 경찰은 평소에는 대충 놔두다가, 일제 단속기간 때는 그 장소에서 쉽게 빨간 딱지를 떼면서 여전히 운전자들과 입씨름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시민은 그 장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조직적으로 항의하지 않고 대부분 재수없이 걸렸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며, 경찰은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문제가 있더라도 어쨌든 운전자가 법규만 잘 지키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무심히 넘겨버리기 쉽다. 따라서 선진국과 후진국은 국민성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에 차이가 있다. 그 장소에 있을 법한 문제점을 진작에 고쳤더라면 시민과 경찰, 카파라치가 공연한 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의 선진 정도는 1% 가능성을 배려하느냐, 0.1% 가능성을 배려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1% 가능성이라면 100명에서 한 명이 그 장소에서 범법한다는 말이며, 그곳에 하루에 5000명이 지나갈 때 50명쯤 범법자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그 숫자를 다시 줄이고 또 줄여서 0.1%로, 0.01%로 낮추어야 한다. 지극히 적은 소수를 배려하는 사회는 선진국이지만, 10%가 위반하든 20%가 범법하든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회는 후진국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우리사회에서 시급히 손보아야 할 곳을 알 수 있다. 학교를 그만 두는 아이와 왕따로 고통받는 아이가 굉장히 많으며, 호주제로 피해보는 사람들과 가족에게 일상적으로 폭행당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통계적으로 1% 또는 0.1%가 넘으면 그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라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제도적 문제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 애가 원래 그랬어, 네가 좀 참으면 되잖아, 그 집안 내력이 안 좋아”라는 말을 좋아한다면, 우리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우리는 아직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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