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파트'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서러움 세가지가 있다면 그 첫번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변화에 따라서 갈아입을 옷가지가 없을 때며, 두번째는 배가 고플 때 먹을 것 없어서 굶주릴 때며, 세번째는 하루 종일 살아 있음에 무엇인가에 간단없는 정진을 하다가 피곤한 몸뚱이 눕힐 공간, 즉 쉼터가 없을 때 그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명있는 모든 것은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하고 비바람 막을 수 있는 공간, 확보를 위하여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철학자는 말하기를 “쾌락의 궁전속을 거닐지라도 초라하지만 내 집만한 곳은 없으며 사람은 자기 집에 있을 때 가장 행복에 가까워지며 밖으로 나가면 그의 행복은 점점 멀어지게 되는 법”이라 하였다.

나는 가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하여 동물의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 세계에서도 영역 다툼에는 목숨걸고 지키려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하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욕심이 많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 세상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지난 겨울에 집없는 사람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다가 온가족이 불에 타죽은 소식을 접하면서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었다. 집이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면서도 백악관이라고 자위하며 한 평생을 살아온 것도 서러운데 하필이면 추운 겨울에 불상사를 입었으니 그야말로 집없는 서러움으로 한 평생을 살다간 사람들이다.

가을철이면 집없는 사람들이 전세방과 월세방, 사글세방 그리고 내집을 마련하여 이주하는 이사 행렬이 줄을 잇는다.

IMF사태 때 서울역사와 지하철역에 신문지와 라면상자를 깔고 덮어 생활하는 수많은 노숙자들도 꿈속에서 그리워하는 곳은 고향산천이며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한평생 따뜻하게 사는 것이 절박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내집을 마련하겠다고 한평생 먹을 것 안먹고 입을 것 덜 입으며 부지런히 재산을 모으는 개미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부동산이나 주식거래 등으로 한탕 잡아보려는 거미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보노라면 어떤 심정일까.

이 세상에서 고마운 것 다섯가지를 뽑으라면 첫번째는 우리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넓은 울타리를 제공해 주는 땅덩어리에 대한 고마움이며, 두번째는 그 울타리속에서 가정이라는 자그마한 울타리를 만들어 사랑과 정을 나눌 수 있도록 가꾸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이며, 세번째는 그런 울타리를 벗어나 좀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가르쳐 주시는 스승님의 은혜이며, 네번째는 그 넓은 울타리에서 한 평생 옳고 그름을 가려주며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다정다감한 친구들의 은혜이며, 다섯번째는 지구라는 울타리 속에서 생명의 자유와 자비광명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춥고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수많은 농부들에 대한 고마움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소중한 고마움이라 하여도 의식주가 해결 안되면 그 어떤 고마움과 은혜에 대한 보답보다는 서러움만 더할 것이니 어느 누가 입을 것을, 먹을 것을, 쉬는 자리를 찾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집 마련은 평생 화두가 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고층빌딩이 올라가고 고급주택이 들어서는 이 시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옛날 농경사회에서 수하석상을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삼고 생활해 온 우리네 선조들의 주거문화는 그래서 더욱 필요한 생활조건이 됐음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조성헌(전 안성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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