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의 현준이 엄마가 고추장 한 단지와 냉이 한 봉지를 보내왔다. 고추장은 상주의 곶감을 가지고 만들었다면서 이 참에 특허를 내보겠다고 한다. 식탁에 올려놓고 먹어 보니 집의 고추장과는 또 다른 각별한 맛이 느껴진다. 냉이는 포도밭을 손질하다가 하도 햇볕이 좋기에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뜯었다는 것이다. 냉이를 살짝 데쳐서 고추장과 참기름에 조몰락조몰락 무치면 밥맛이 훨씬 있을 거라고 편지까지 써넣어 주었다.
현준이 엄마는 전에도 청국장이며 된장을 손수 만들어 보내주기도 하고 곶감을 빚어 보내주기도 했다. 그 정성이 너무도 지극하여 나보다도 집사람이 더 고마워한다. 현준이 엄마는 여성회관 문예창작반을 통해 내 강의를 받은 수강생이다. 수필을 잘 써서 언젠가는 수필가로 등단이 될 거라는 기대에 찼던 사람이다. 그런데 하루는 느닷없이 부군과 함께 상주로 내려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우면서도 시골 생활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이건 쓸데없는 우려에 불과했다. 상주로 내려간 현준이 엄마의 편지에는 시골 생활에 대한 기쁨과 감동이 저 들녘의 풀들처럼 무성하기만 했다. 무엇보다도 현준이 남매를 도시가 아닌 자연 속에서 키울 수가 있어서 그지없이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는 꼭 한번 시간을 내어 다녀가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았다. 지난해 나는 마침 현준이 엄마의 친구들이 상주를 다니러 가는 편에 끼어 현준이 엄마의 사는 모습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하룻밤을 그곳에서 묵으면서 나는 왜 현준이 엄마가 시골을 찾아갔나를 비로소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인간의 참된 행복이었다. 그랬다. 내가 본 현준이 엄마의 생활은 최소한의 소비를 통해 보다 많은 풍요를 얻는 넉넉한 생활이었다. 또한 정신없이 허둥대며 살아야하는 삶 대신 조금 느리더라도 생각하며 사는 삶에 있었다. 여기에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어디서든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고, 시냇물 소리며,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 축복의 삶에 있었다.
마침 틱낫한 스님이 방한중이다. 시인이며 평화운동가인 스님은 이미 여러권의 책을 통해 우리들의 비뚤어진 모습을 알려주었고 참삶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 ‘그냥 대지 위를 천천히 걸어라. 차가운 아스팔트가 아니라 아름다운 지구 위를 걷는다고 생각하라. 다음, 생각을 놓아버리고 그냥 존재하라.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그대 발걸음마다 발걸음이 일고, 그대 발걸음마다 한 송이 꽃이 핀다.’
그렇다. 우린 너무 긴장 일변도의 삶에 익숙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여기며 한시도 느긋할 수가 없다. 스스로 행복해지지 못하면 결코 영원히 행복할 수가 없다는 말은 명언중의 명언이다.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부쩍 전원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도시적 삶의 한계에 다다른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물 속의 산소가 부족하면 고기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 아닌가.
오늘 저녁엔 맑은 별들을 지붕 위에 띄워 놓고 책상 앞에 고이 앉았을 저 현준이 엄마한테 편지라도 써야 할까 보다. 보내준 고추장과 냉이 덕분에 밥 한그릇을 뚝딱 게눈 감추듯 먹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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