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대통령의 체코 공식방문에 앞서 정부 종합답사단의 일원으로 체코 대통령궁을 방문했을 때 애연가인 나의 눈에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궁 내 곳곳에 비치되어 있는 크리스탈 재떨이였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곳에서 흡연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세계 어느 대통령 궁에서도 이런 흡연의 자유는 누릴 수 없다) 이렇게 끽연을 만끽(?)할 수 있었던 분위기는 이곳이 바로 대단한(?) 애연가인 하벨 체코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곳이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물론 백해무익하다는 담배로 인해 96년 이후 하벨은 폐암 수술을 받는 등 건강문제로 시달렸다.
어쨌든 문화를 사랑하는 세계적 극작가 하벨은 매우 소탈하고 친근한 대통령이었다. 경호원 없이 청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며 길거리를 걷거나, 퇴근후 맥주집에서 다른 손님들과 격의 없는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는 서방의 언론으로부터 ‘록큰롤 프레지던트’라고 불릴 만큼 대중적 친화력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의 만델라로 불리 울 만큼 인권과 인간성을 중시하는 지도자로, 민주주의의 우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재임 중 경제적 안정과 OECD, NATO, EU가입 등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였지만 반면,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 총리사임문제 개입 등의 적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가 공산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던 20여년 동안은 물론 지난 2월 대통령직을 퇴임 할 때까지 15년 동안 권좌에 있을 수 있었고 3선 출마 금지에 따라 지난 2월 대통령직을 떠난 후에도 아직까지 정치지도자로서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는 까닭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아주 평이한 기본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혁명 등을 거치며 반체제 인사로 살아온 그에게 행정경험은 전혀 없었지만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진실과 더불어 박식한 지식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통찰력으로 극복해 왔다.
그는 ‘도덕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치를 삶 자체로 보여준 투사’로 일컬어질 정도로 도덕을 모든 것의 기본으로 삼고, 최선의 정책을 교양과 예의라 하며, 인권과 인간성을 중시한 인물이다.
혹자는 이를 ‘反政治의 政治’라 평하기도 한다.
으레 정치인들의 知行合一이 안 되는 ‘입에 발린 소리’에 익숙한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이런 익숙함에 신선한 파괴(?)를 던진 인물이다.
작가에서 반체제 인사로 그리고 대통령으로 그리고 이젠 자연인 하벨로서 다시 극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하벨. ‘재신임’ 뉴스가 지면을 덮은 가운데 수상은 못했지만 올 노벨 평화상의 유력 후보로 거명되었다는 자그마한 기사 한 줄이 새삼 그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치적은 내가 아니라 대중과 정치인 , 언론인, 정치학자, 역사가의 몫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유와 존엄을 위해 일해주십시오.” 하벨의 의회 고별연설이다.
/정상환.남서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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