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 우편함에 청첩장이 많이 들어있는 것을 보니 결혼 시즌임에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다. 나 또한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손자까지 보았고, 내 주위의 친지들도 자식들의 출가를 모두 마쳐가고 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할 수 있다. 아울러 지난날 행복을 빌며 주례를 섰던 수많은 신랑·신부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같이 있던 직원의 예식에 혼인 서약을 낭독하고 신랑의 대답을 요구하자 예식장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답을 하는 바람에 웃음바다가 되었던 일, 신부가 예식 내내 눈물을 흘려 난처했던 일, 더위 탓인지 너무 긴장해서인지 신부가 계속 떨어 쓰러질 듯해서 주례사를 줄여 했던 일이며 기억에 남는 일이 많다.
나의 실수담 이라고나 할까? 주례 도중 하객들이 계속 웃길래 의아해 했는데 신랑·신부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고 있다는 쪽지가 올라와 웃음으로 넘기며 바로 잡았던 일도 있었다.
과거에 주례를 서 주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 집안의 안부를 물었더니 “영감님이 주례를 서주셔서 얻은 첫째 아이가 대학교 3학년이 되었어요” 하며 아이를 소개 시켜 주었다.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가 없고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일이었다.
나는 주례를 서면서 젊은 부부에게 서로 사랑하며 올바르게 살라 했는데, 과연 나의 삶은 언행 일치를 이루며 떳떳이 살았는지 되새겨 본다. 또한 혼인 서약을 받고 축복의 주례사를 했던 수많은 부부들이 어느 곳에 있던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기를 기원한다.
얼마 전 피치 못할 사람에게 주례 청탁이 왔으나 나 또한 올바른 삶을 살아오지 못해 후회하면서 남에게 이렇게 저렇게 살아달라 부탁하는 것이 떳떳하지 못한 것 같아 거절하게 되었다. 하지만 간절한 부탁으로 내 마음이 움직여 주례를 보게 되었는데,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주례’는 말 그대로 그 날의 식을 주관하는 사람이고, ‘사회자’는 행사의 모든 진행을 맡아 하는 사람인데 두 사람의 역할은 간데 없고 예식장 여직원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객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신랑·신부 입장시 칼을 들어 그 밑을 통과하게 하고, 주례라는 사람을 멀거니 세워 두고 케이크 절단 식이며 샴페인 러브 샷이라니 어디에서부터 온 예법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모자라 녹음된 목소리로 식순을 다 말해 버리는 우습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서 주례를 하게 되었다. 형식이나 절차가 아이디어로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일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이 형식에만 치우치기 보다 주례자나 사회자의 본연의 임무를 다 할 수 있는 정숙한 분위기로 치러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즈음 주객이 전도 된 것이 많이 있는데 세상이 변해도 올바른 것은 지키고 보존하며 제자리로 돌려놓을 줄도 아는 새로운 사회 기풍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황종태 前남양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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